1998년 파주 용주골 사창가 일대를 주름잡던 스포츠파의 두목급이던 박모씨가 자신의 욕실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자살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로부터 1년후 서울 마포 길거리에서 30대 남성 이씨가 몸을 칼로 수십차례나 난자당한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두사건의 연관성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검찰로 한통의 제보가 날아 들었다. 박씨가 살해된것은 박모씨와 조직내에서 알력을 벌이던 신씨가 옥중에서 부하들에게 밀지로 지시했기 때문이며,이씨가 살해된 것은 이 밀지를 엿본 입 막음의 댓가로 신씨에게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는것이다.

평소 "조폭잡는 검사"로 명성을 떨치던 홍모검사는 이 사건을 무려 4년여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던중 관련해 조사를 받던 한 피의자가 검찰청내에서 고문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라가 발칵 뒤집어진 이 초유의 사건으로 인해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동시퇴진하고 홍검사는 구속되는 참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살인죄가 유력한것으로 보였던 피의자들은 유유자적 풀려난다. 이때 검찰과 경찰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제 조폭수사는 끝났다"
"치밀하기 짝이 없는 조폭범죄의 특성상 자백을 받아낼 최소한의 물리적 여지마저 봐주지 않는다면 수사는 어려워질것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적약자인 서민들에게 돌아가게 될것이다"
"두고봐라. 인권도 좋지만 과연 그 피해가 부자와 서민중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런지"
1985년 서울 영등포에 사는 조미애(가명)씨는 심각한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주먹을 휘드르는 남편의 폭력에 조씨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남편이 들어올 시간만 되면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던 어느날, 그 날도 남편은 오후 퇴근하자마자부터 아무런 이유없이 아내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주먹으로 심하게 때려 눈이 붓고 이빨이 깨졌지만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병으로 머리를 찍고 깨진 병으로 다시 목을 그었다. 아내는 네발로 기어가면서 집밖으로 도망가려했다. 그 과정에서 깨진 유리가 조씨의 온몸으로 박혀 들어갔다. 그럼에도 아내는 처절하게 도망가려고 했다. 그걸 본 남편은 아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아예 옷을 찢어발겨 알몸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아내는 피를 흘리며 집밖으로 알몸으로 뛰쳐나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것을 처벌할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신고해본들 경찰이 잘 출동하지도 않을 뿐더러 기껏해야 와서 "참으시죠" "이제 그만 때리시죠"라고 말리는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1998년 이런 폭력도 처벌할수 있는 역사적 법이 제정된다. 바로 "가정폭력등의 범죄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이때 남편들과 남성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제 가정평화는 끝났다"
"그나마 남자가 가장으로서 여자와 아이를 때릴수 있는 권한을 행사함으로서 가정이 바로서고 나라가 바로설수 있었는데 그걸 못하게 한다면 과연 가정과 나라가 바로설수 있겠는가"
"두고봐라. 비폭력도 좋고 남녀평등도 좋지만 집안꼴 나라꼴이 과연 어느 지경이 될런지"
1995년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김순자(가명)씨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학생들중 유독 한 여학생의 부모만이 촌지를 가져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 김씨는 수업에 들어갈때마다 툭하면 그 여학생을 폭행했다. 따귀를 수십차례 때리는가 하면,어려운 질문을 던져 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발로 걷어찬뒤 쓰러진 배위를 다시 발로 내리쳐 짓이겨 비벼 버렸다. 겁에 질린 여학생은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김씨는 쓰러진 여학생의 머리를 움켜쥐고 다시 일으켜세운뒤 따귀를 계속 때렸다.
아이의 코에선 피가 흐르고 얼굴은 온통 퉁퉁부어 올랐다. 집에서 이런 기막힌 일을 전해들은 부모는 한숨을 쉬었다. 그여교사는 자신의 집이 잘 사는줄 알았던 모양이지만 사실은 빚보증을 잘못 서 하루하루 막일과 식당일로 연명해가는 신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어떻게든 성의를 보이지 않고서는 자식이 도저히 학교에 다닐수 없음을 알게된 부모는 결국 사채를 빌려 다음날 학교를 찾아가 김씨 앞에 돈을 바친후 머리를 조아렸다. 이후 여교사의 여학생에 대한 폭력은 자취를 감추었다.
2010년 한 지자제의 교육감이 체벌을 금지하는 "학생인권조례안"을 발표했다. 이때 교사들과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제 학교평화는 끝났다"
"그나마 교사가 부모의 대리자로서 학생들을 때릴수 있는 권한을 행사함으로서 학교가 바로서고 사회가 바로설수 있었는데 그걸 못하게 한다면 과연 학교와 사회가 바로설수 있겠는가"
"두고봐라. 비폭력도 좋고 학생인권도 좋지만 학교꼴 사회꼴이 과연 어느 지경이 될런지"

피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폭력,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 본질이 다른것 같지만 폭력은 어디까지나 폭력일뿐이다.
이 셋중에서 그나마 가장 인식이 바르게 개선된것이 바로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다. 여성분에게 하나만 물어보자. 정당한경우에 한해 남편이 아내를 체벌하는것을 허용할 의사가 있는지 말이다. 아마 여성의 100%가 반대할것이다.
만약 이 질문을 남편에게만 던진뒤 과반이 동의하면 법을 개정해 아내를 특별한 경우에 한해 정해진 방법으로 구타할수 있는 법률을 만든다면 아내들의 반응은 과연 어떨까. 자신들을 빼놓고 남성들만 토론해 결정하는 그 과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들것이다.
교사의학생에 대한 폭력이나 체벌도 마찬가지다. 그걸 허용하느냐의 여부를 학생은 빼놓은채 교사와 학부모가 결정한다라는것은 있을수 없는 이야기다. 학생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는 떳떳한 한 삶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피의자에 대한 수사기관의 폭력 역시도 마찬가지다. 결국 조폭같은 특수한 경우에 한해 서민을 위한 구타 고문수사를 허용한다라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그 구타와 고문은 수사 전방위로 확산되게 된다. 따라서 그 피해는 결국 힘없는 서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수사기관이 조폭에 한해서만 구타와 고문을 가할거라는 착각. 남편이 아내가 정말 잘못했을때만 때릴거라는 착각. 교사가 학생이 어떤수단으로 교육해도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을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서만 최소화해 사용할거라는 착각. 모두 착각일뿐인것이다. 결국 피해는 죄없는 선량한 서민,착한 아내 그리고 말잘듣는 학생 모두에게 돌아갈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럼 학생에 대한 체벌권한을 상실한 교사들이 학교의 질서를 지켜내게 할수 있는 교훈을 얻어낼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내와 남편이 새로운 가정질서를 형성해 나가고 있는 작금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대화,소통,배려등에 관한 일말의 노력도 없이 무조건 "남편으로 하여금 아내를 때리지 못하게 한뒤부터 여자들이 설쳐 사회가 혼란해지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직 많지만 이제는 남녀가 동등하고 남편과 아내가 대화와 소통으로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있다. 이혼,별거등 가정해체도 꽤 많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회복지체제의 수립,공동체사회 리모델링의 진통과정으로 봐야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분명 체벌없이는 다루기 힘든 학생,체벌로도 고쳐지지 않는 학생은 존재한다. 바로 그런 그들을 최대한 올바른 교육목표 범위내로 집어넣기 위해 교사가 존재하는것이다. 그럼에도 "구타를 못하게하면 학생을 포기하겠다"라고 말하는 교사가 있다면 그 교사는 교사의 자격이 없는것이라 말할수 있다.
예전에 남편이 아내를 마음놓고 때릴수 있었던 시절 나는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만약 지금 남편들이 아내에 대한 폭력행사를 최소화하여 종식시켜 낸다라면 남편이 아내를 때릴수 있는 시기가 역설적으로 더 오래갈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걸 최대한 빨리 개선해내지 못한다라면 가정폭력이 강제로 금지된후 남편들은 한동안 큰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것이다."
말마따나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금지를 도저히 용납하거나 이해할수 없었던 남성들중 상당수는 새로운 삶의 질서속으로 편입해 들어가지 못하고 아예 소통의 끈을 놓아버렸다.
반면,가정폭력법 제정 이전에도 여성을 때리지 않던 남성,이후에 새로운 질서에 순응한 남성들은 여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다. 그들이 그럴수 있었던 이유는 "뭐뭐 못하게 해주면 아예 포기해버리겠다"라는 식의 무지한 마인드를 버렸기 때문이다.
"고문 못하게 하면 조폭수사 집어 치우겠다. 한번 죽어봐라"
"구타 못하게 하면 결혼 안하거나 이혼하거나 아니면 대화와 소통의 문을 닫아 버리겠다. 집안 절단나는 모습 한번 지켜봐라"
"체벌 못하게 하면 학생이 공부를 하건 말건 다른 학생을 때리건 말건 그냥 놔두겠다. 학교 절단나는 모습 한번 지켜봐라. 결국 체벌을 다시 해달라고 빌게 될것이다"
이런 마인드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선물은 바로 "퇴직"이어야만 한다.
"그래요. 어렵지만 한번 해봅시다. 다만,최선을 다한 이후에도 도저히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에 대한 대응매뉴얼은 꾸준하게 개발되어야 할것입니다"
이런 마인드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선문은 바로 "화답"이어야 한다. 교육여건을 개선하고 폭력학생들을 제지하고 치료하고 특수교육할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교사들의 근무여건과 사기진작을 해줄수 있는 각종 정책들을 마련해 주어야 할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나도 학생들의 엇나간 모습을 보면 답답할때가 많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는 총체적인 면에 있어서 중대한 과도기에 진입해 있으며 어쩔수 없이 수많은 진통들을 겪어야만 함을 알아야 한다.
체벌을 허용하면,체벌의 남용과 그럼에도 소용없는 교육문제가 남지만. 체벌을 금지하면 체벌의 남용문제는 사라지고 그럼 그 이후 어떻게 하면 될것인가의 문제만이 남게 된다. 그 "어떻게"를 우리사회 모두가 고민해 풀어나갈수 있어야 한다. 일부 아이들의 막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체벌의 부재"만 절감하지 말고 "체벌이외 노력의 부재'를 절감할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는 사회의 거울이며 그들의 잘못된 모습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성적표일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가야할 길을 최대한 빨리 가려는것이 바로 "개혁"이다. 어차피 가야할 길을 최대한 늦게 가려는것이 바로 "수구"다. 아이들을 영원히 때릴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때릴수는 없지만 한동안은 체벌의 길을 더 가야 하는 것일까. 영원히 때릴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멈추고 대안의 길로 나아가는것이 정답일수있다라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로 인한 "아이들의 방자함"이 아니라 그런 아이들에 대한 그 어떤 노력도 놓아버림으로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수구적 작태"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가장 힘든 것이 교육이며,가장 합의를 도출해 내기 힘든것 역시도 교육이다. 그 이유는 대화와 소통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누리던 지위를 내려놓지 않으려 하거나 또한 쉽고 편한 길로만 가려드는 인간의 속성때문이다. 그 속성을 참아내고 변화시켜 나갈수 있을때 진정한 교육의 문(門)이 열릴수 있게 될것이라는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