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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이해찬이 지은 죄
조회 3,969  |  추천 26  |  비추천 0  |  점수 110  |  2010-08-26 16:13
글쓴이 :    슬픈한국

이해찬이 지은 죄!
-그것은 노무현과 닮은꼴이라는것.

글쓴이-유시춘(2007.7.24)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손목이 사슬에 묶여
또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대전옥일까 아니면 대구옥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낮익은 거리 산과 강을 끼고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차에서 내려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차에서 내려
숫돌에 낫을 갈아 벼를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으로 가고 싶다.
아, 내리고 싶다 차에서 내려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고 있는
아이들의 방죽가로 가고 싶다
가서 그들과 함께 나도 일하고 놀고 싶다.
이 허리 이 손목에서 오라풀고 사슬풀고
발목이 시리도록 들길 한번 나도 걷고 싶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논둑길 밭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다가 숨이 차면 아픈 다리 쉬었다가고
가다가 목이 마르면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하늘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먹고
날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를 따라 나도 가고 싶다 나의 집으로

그러나 나를 태운 압송차는 멈춰주지 않는다.
내를 끼고 강을 건너 땅거미가 내리는 산기슭을 돈다
저건너 마을에서는 저녁밥을 짓고 있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 김남주 ‘이가을에 나는’ -

가을이 깊어, 하늘이 풍덩 빠져버리고프게 푸르고 맑은 날에 한 편의 시를 생각한다.

삼십대 청춘의 시인은 성문법인 긴급조치와 유신을 비방하고 반대한 죄로 높으신 법관나으리로부터 무기징역형을 받고 기약없는 징역을 살고 있는 중이다. ‘국가’를 ‘보안’하기 위해 ‘너같은 종자는 죽어 나올때까지 감옥에서 썩으라’고 법관은 추상같이 성문법으로 판결했다.

80년 5월 광주의 대학살 소식이 감옥에도 전해지고 ‘공산당의 사주를 받은 폭도’들이 대거 감옥을 채우자 교정당국은 대대적으로 이감을 단행한다. 이감에 대한 설명은 한마디도 없다. 새벽에 교도관이 말한다. ‘짐 싸’라고.

그리고 시인은 손목에 수갑으로, 허리에는 오랏줄에 묶인채 호송차에 오른다. 호송차 안의 때묻은 커텐이 흔들릴 때마다 바깥 풍경이 잠시 그의 눈에 안긴다. 시인의 가슴은 뛴다. 그리움이 밀물처럼 쏴아하게 소리내며 그의 가슴을 덮친다.

그는 낮선 감옥으로 옮겨 앉아 손톱을 꼭꼭 눌러 우유곽의 안쪽에다 그리움을 새긴다. 그 때의 감옥은 신무구독은커녕 일체의 종이와 필기구를 금지했기 때문에 그는 가까스로 숨어서 그런 일을 해야 했다.

생각해보라. 조선독립을 꿈꾸었다하여 일제가 감옥에 쳐넣은 문인들은 그곳에서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만해 한용운의 ‘조선독립의 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그리고 우리 소설문학사의 금자탑인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이 식민지의 감옥에서 씌어진 것이라면 여러분은 믿겠는가. 그런데 유신헌법과 5공화국의 감옥이 동족의 정치적반대자에게 연필 한자루 허락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믿겠는가.

일제의 감옥보다 더 혹독했던 것이 군부독재하 한국의 감옥이었다. 김남주 시인이 이렇게 숨어서 시를 쓰던 즈음에 그이보다 일곱 살 아래인 이해찬은 안동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전두환 일당이 집권야욕에 눈멀어 소위 ‘김대중내란음모’를 조작하다보니 서울대 복학생이자 74년 ‘민청학련’으로 투옥된 바 있는 그를 다시 엮어 넣은 것이다.

어느 가을 날, 이해찬은 일몰을 등지고 감옥 담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세 여성의 뒷모습을 본다. 그를 면회하고 돌아가는 어머니, 아내, 어린 딸의 그림자가 길게 나란히 땅 위에 드리웠다. 그의 눈에 회한이 스치고, 마음은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졌다. 아, 정녕 이 야만의 시대가 끝나는 날이 도래할 것인가. 내 목숨이 살아 있는 날에 그 날을 볼 수 있을 것인가.

순간,그는 강철같은 투사가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의 아들, 젊은 아내의 남편, 유년의 딸의 아버지가 되어 긴 그림자를 끌고 사라지는 세 여성을 그리워하는 이땅의 가장 평범한 남자가 된다. 어쩌면 그 밤에 그는 독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절망의 심연에서 허우적이며 울었을지 모른다. 그가 믿는 것은 오로지 깨어난 국민의 힘이 언젠가는 헌법 1조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는 지극히 불투명한 희망 하나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노태우정부 시절에 김남주는 감옥에서 나와 우유곽에 손톱으로 새긴 시편들을 엮어 시집을 출간했다. 위의 시는 그 때 출간되었다. 이해찬은 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되었다. 청문회 스타로 이름이 알려지고 의정활동 평가 1위의 빼어난 정치활동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나는 80년대를 그와 함께 많은 일을 획책하고 도모했다. 그의 사적인 생활을 비교적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재야시절은물론 정치입문 이후에도 그는 늘 가난했다. 신림동에서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며 정계입문 이후에도 늘 돈에 쪼달려 그의 아내가 한때 곰탕집을 운영하기도 했으니 결코 유능하고 좋은 남편은 아니었다.

때로 원칙 앞에 추호의 타협이 없는 그를 두고 ‘송곳’이라는 별칭을 부르기도 하지만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된 이후, 그의 인사권으로 한 일 중에 정실인사가 있다면 두가지이다.

민통련 기관지‘민중의 소리’ 발간 실무를 오랫동안 맡았던 청년이 있었다. 그는 말씨도 다소 어눌한데다 곱추였다. 그러나 홍보 업무에는 탁월한 기량을 가진 이였다. 장애인에다 운동권이라는 이중족쇄가 있었으니 취업이 어려웠다. 이해찬은 그리 높지 않은 자리에 그를 적절히 취업시켰다.

또 한 건은 김병걸 교수님이다. 작은 체구에 일찍이 해직교수가 된 이후 일정한 직업없이 문필로 어렵게 사는 곱고 단정한 이였다. 이해찬은 그분을 교수가 맡기에 매우 적임을 골라 임명했다. 숟가락 하나가진 이가 숟가락 두 개를 가지게 된 탓일까. 그 분은 오래지 않아 고문후유증으로 발병한 병으로 작고하셨다.

이해찬은 가장 낮고 어려운 자리에 있었던 이 두 사람 이외에는 어느 경우도 정실인사를 하지 않았다. 때문에 운동권 선후배로부터 ‘냉혈한’이라는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는 원칙주의자이다.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엄격하다. 자신과의 사적관계에 추호라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해찬이 아군으로부터 받는 비난은 대체로 이런 품성에서 비롯한다.

이해찬을 두고 한나라당이 ‘파면’운운한단다. 그의 죄는 무엇인가. 그가 ‘싹싹빌고 사죄하면’ ‘차떼기’ 당이 ‘소쿠리’당이 되기라도 하는 걸까. 그의 발언이 팩트가 아니란 말인가.

그의 잘못은 따로 있다. 그는 꼬리 아홉을 감추고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홀리는 구미호같은 술수가 없다. 적당히 의전적인 발언으로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교언영색’하는 재주가 없다는 말이다. ‘면종복배’하는 이중성이 지나치게 결핍된 사람이니 어쩌면 정치인으로서는 그 자질이 영점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꼴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왜 기득권의 중심부인 조선 동아와 싸우는가. 절대 세불리한 전쟁을 하는가.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이 칼이 들어와도 ‘옳지 않은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조선 동아가 만끽하고 있는 언론자유를 보면서, 한나라당이 구가하고 있는 의회정치의 진수를 보면서 나는 그만 ‘민주주의’가 싫어진다.

‘법치’를 지극히 좋아하는자들이 아무 법적 근거없이 자기들 맘에 들지 않는 기사 한 줄 썼다고 기자를 잡아다가 족치고, ‘대한민국 국시는 반공 아닌 통일’이어야 한다고 국회의원이 의회단상에서 말했다고 국보법으로 감방에 쳐넣은 사람들이, 그런 일을 잘한다고 박수치던 집단이 이제 권력을 사적으로 농단하지 않는 대통령이 권좌에 있는 틈을 이용해 오히려 비수를 날리는 작금의 현실이 ‘민주주의’라면 나는 그만 지도자의 ‘덕치’를 중시한 왕조로 돌아가고 싶다. 차라리 이천년 전의 플라톤의 ‘이상국가’로 회귀하고 싶다.

만인공지의 차떼기당이라는 말이 국회를 공전시킬 ‘허위사실’유포라도 된다는 말인가.

우리당은 ‘상생’이라는 허구적 신화에서 깨어나라. 등뒤에 칼을 숨긴자와는 상생할 수가 없다. 한 손에 ‘국보법’이라는 비수를 치켜들고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부를 수는 없잖은가.

한나라당과 그 당을 정치위원회로 거느린 극우신문이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호시탐탐 상처입혀 쓰러뜨릴 궁리에 매몰되어 있는데 교양있게 악수하고 밥먹고 점잖떠는 일을 ‘안정적 개혁’이라 호도하지 말라. 기실 이해찬 총리를 향한 공격은 바로 노무현대통령을 향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공공재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피흘린 자도, 이를 탄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집단에게도 공평하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 참으로 불공평하다.

김남주시인은 감옥 십년을 살고 나와 세상에서 5년을 살았다. 옥바라지하던 동지와 결혼해 아들 하나 남겨두고 옥독으로 얻은 암으로 일찍 서둘러 세상을 떠났다. 그 아들 이름이 ‘김 토일’이다. 노동자들이 토요일 일요일 쉬는 세상이 오라고 붙여준 이름인데 그의 소망대로 노동자가 주5일 근무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정작 그는 가고 없다.

이렇듯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피로 성취된 자유의 혼란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회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할지도 모른다. ‘나치’는 결코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독일국민의 합법적 선택에 의해 출현한 집단이었다.

나는 이 사실이 두렵다.

이해찬 총리가 무력으로 위해를 했는가. 그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답변했을 뿐이다. 세불리와 세유리를 계산하지 못하는 우둔함이 그의 죄이다. 그런 품성을 가진 이가 5선의원으로 총리로 있는 대한민국이, 그 정치가 때로 한없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이 나라의 꿈나무들에게 ‘정치인은 권모술수가 아니라 원칙과 진정성으로 승부한다’는 텍스트를 입증해 줄 수 있음이.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날에 나는 왜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감행한 재앙의 역사를 떠올리는가. 그것은 바로 학살과 부정비리의 원죄를 카인의 표적처럼 결코 지우지 못하는 집단이 벌이고 있는 자유의 향연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이해찬 총리는 사실을 말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라.

안정적 개혁을 주도하는 이들은 교양과 상생과 화해의 신화를 지피면서 한나라당과 잘 타협하시라. 그래야 한나라당은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을 시정잡배의 욕설로 짓이기는 연극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테니까.

그것이 정녕 국태민안을 위한 것이라면.





왕소심 11-05-25 14:57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한동안 안정이 되지 않자 대혁명을 후회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자유와 가치를 저버리는 실수를 하지 않았기에 오늘의 프랑스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두번 다시 자유와 가치를 저버리는 실수를 국민들이 하지 않기를 기대합니다.

좋은 글 다시한번 감사 드립니다.
휴먼 12-04-19 12:33
 
대단한 사람입니다. 장하신 분입니다.
이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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