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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해찬! 대선에 나오라!
조회 1,353  |  찬성 22  |  반대 0  |  점수 130  |  2010-12-27 14:34
글쓴이 :    슬픈한국

 
출처-뉴시스

왜 이해찬인가?  

이해찬은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을 동시에 계승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 중의 하나다. 사실 이 표현은 좀 어눌하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유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의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 남북경제 협력정책. 노무현의 정경언 유착단절, 정치적 투명성 구현, 개혁입법 정비, 사회적 갈등 해결 시스템 구축 등의 모든 중심에 서 있어 왔다.

또한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전략통으로서 DJP연합, 행정 수도 이전 등을 기획 추진하며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서울 시장 선거 때는 단번에 박찬종을 격침 시키며 조순의 당선을 도왔다.

그 자신은 서울시 정무 부시장, 교육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치며 행정 경험을 두루 쌓아 놓았고 북미수교, 남북정상회담 등 대북 현안의 중심에 서서 통일의 기반을 닦아낸바 있다.

이것은 김-노 두 전현직 대통령의 절대적 신뢰에서 기인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를 김대중 노무현 두 인물이 가장 아끼는 정치인으로만 묘사하는 것은 다소 억울하다.

그는 두 인물의 정책을 직접 입안했을뿐만 아니라 그들의 노선이 어긋날 때마다 수시로 다투어 가며 탈당까지 감행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동교동 계열로 분류되지도 친노 계열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그 자신도 잘하면 같이 가는 것이고 못하면 같이 못가는 것인데 그들이 잘해왔기 때문에 여기까지 같이 왔을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친한 정치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꼽는다. 또한 노무현 지지세력의 가장 강력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시민 세력을 조용히 흡수해낼 저력을 지닌 유일한 정치인으로도 평가받는다. 예전 권영길의 아킬레스건을 해결 해준 뒤로 민노당의 신망도 두텁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한다. 국회의원 중 학습을 놓지않는 의원은 이해찬뿐이라는 평가다. 이런 덕택에 그는 시사저널이 최초로 시도한 의정 활동 평가에서 13대 14대 압도적 1위, 조선일보 선정 15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각설하고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대선이 코앞이라는 점이다. 12월이 대선이니 7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경선준비, 후보선출, 선거운동 이것은 결코 짧은시일을 소요로 하는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모든 교집합적 요소들을 일시에 엮어 후보를 단기간에 합의해 내야하는 상황이 조만간 다가올 수 밖에는 없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기적에 가까운 지지율 대반등이 필요하다.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다가가 있는 후보가 현재로선 바로 이해찬뿐이라는게 나의 판단이다.

그럼 이쯤에서 사족을 접고 이해찬이 누구인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해찬 당신 누구세요?

유시민과의 첫 만남..

이해찬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 유인물을 제작 유포하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 11개월의 첫 징역을 살게 되었다. 출소후 제적된 그는 한동안 방황하다 1978년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의 김정옥과 결혼한 뒤 그해 6월경 서울 신림동에 최초의 사회 과학 서점인 광장서적을 열고 나서야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1970년 후반 제적학생그룹은 청협이라는 단체를 조직하고 YMCA 위장 결혼식 사건 등을 주도 했는데 이해찬은 핵심멤버로 청협에 참여한 뒤 서울대 복학생 협의회를 구성해 회장으로 선출된 뒤 서울대 총학생회 지도부 장악에 나섰다. 이때 총 학생회 산하 대의원회 의장이 바로 유시민이었다.

이때 1학년생들의 병영집체 훈련 응소 문제로 노선싸움이 크게 붙었다. 총학생회는 응소 거부를, 복학생 협의회는 응소해 훈련을 빨리 마치고 본격적인 정치투쟁에 나서자고 주장한 것이다.

하루는 집회도중 복학생 협의회 회원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했다. 그러나 사회를 보던 유시민이 발언권을 주지 않은 채 마이크를 끄고 집회를 끝내 버렸다. 이에 격분한 이해찬이 달려나가 유시민의 멱살을 잡았다.

주먹질이 날아가려는 찰라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싸움은 일단락됐다. 이게 둘의 첫 만남이다. 유시민은 후에 누나인 유시춘의 주선으로 이해찬과 다시 만났고 13대 때 이해찬의 보좌관으로 국회로 진출했다. 

첫 만남은 비록 이랬지만 지금도 유시민은 가장 존경하는 의원으로 이해찬을 꼽고 있고 이해찬은 가장 일 잘하는 국회의원으로 유시민을 꼽고 있다.

내가 보기에 이해찬 유시민은 공통점이 많다. 둘은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평판에 신경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나오거나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결코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 둘은 노무현을 인정하고 둘 모두 지식인 아군(국회의원, 기자 등 )이 별로 없다. 바로 그렇기에 대중적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과의 첫 만남.

두 사람은 1987년 재야단체인 민주통일 민중운동 연합(민통련)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됐다. 당시 이해찬은 서울본부 정책실장이었고 노무현은 부산 민통련 간부였다.

두 사람은 13대 때 나란히 초선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한 이후 서로 어려운 고비처마다 도와주기를 거듭했는데...

13대 때 노무현이 제 구실을 못하는 국회에 회의가 든다며 잠적했다 복귀한뒤 궁지에 몰리자 이해찬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엄호했다.

14대 때는 이해찬이 김대중의 제왕적 권력을 문제 삼으며 반동교동 깃발을 들었다가 공천탈락 위기에 몰리자 노무현이 나서 이해찬같이 뛰어난 사람을 공천하지 않으면 나도 정치를 그만 두겠다고 나서며 이해찬을 도와 주었다.

DJ정부 시절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이 되자 노무현은 교육 위원회를 선택한 뒤 교원 정년 단축 등(IMF 시절이었다)에 대한 반발로 이해찬이 어려움에 처하자 적극 나서 그를 도왔다.

한편 이해찬은 DJ에게 노무현을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적극 추천했고 DJ는 노무현의 능력을 높이 사 그를 장관으로 기용했다.

2002년 노무현은 이해찬에게 선대본 기획본부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고 이해찬은 흔쾌히 응한 뒤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이해찬에게 여러 요직들을 제의했으나 이해찬은 극구 사양했고 그러다 가장 어려울 때 그의 곁으로 돌아와 조선일보 한나라당과 당당하게 싸워가며 훌륭히 국정을 수행해 냈다.

여기까지만 보면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서로 끌어주기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찬이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를 안다면 그런 소리는 결코 하지 못한다.

이해찬 당신 도대체 누구세요?

1989년 이해찬이 원자력 연구소를 감사하다 안면도에 핵폐기물장을 건립하려던 계획을 밝혀냈다. 그러나 충남지사 S모씨는 처음에는 관련문서를 소각했다고 발뺌 하다가 나중에는 비밀 문서라 내줄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는 이해찬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였다. 원자력 연구소에 대한 감사를 마친 뒤 충남도청에 대한 감사를 앞두고 이해찬에게 아버지로부터 진행상황에 대한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이해찬은 제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 마세요라고 끊은 뒤 다음날 국감에서 그를 거세게 몰아 붙였다. 결국 그는 파문의 책임을 지고 지사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해찬에게는 금지옥엽 하는 외동딸이 하나 있는데 숭실대 중문학과인가를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딸의 인생에도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지론으로 알아서 삶을 개척 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부모의 정치적 관여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퍼블릭 마인드를 강조한다. 공과 사가 섞이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며 수신과 평천하를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오직 능력과 소신을 높이 사 노무현과 함께 해왔고 오직 그것 하나만으로 동교동계로 융화되지 않으며 김대중에게 인정을 받아온 그다.

"이해찬은 무슨일이든 맡기면 확실하게 하는 사람"-김대중
"이해찬은 무슨일이든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노무현

"이해찬은 끊임없이 학습하여, 가장 빨리 본질에 접근한 뒤, 그 해법을 정확히 파악해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시행하는 사람"- 한나라당 모의원"

"이해찬은 정책방향은 절대로 굽히지 않돼,그 시기는 조절할 줄 아는 사람" - 조선일보

그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이런 그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동시에 우리에게도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을 과연 우연으로만 봐야 하는가?

남자 이해찬! 대선에 나오라!

이해찬이 국회 보사 위원으로 활동할 때 국가 보훈처는 독립유공자 가운데 친일 혐의자를 색출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그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란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찌된게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꽁무니를 슬금슬금 빼더니만 급기야는 서훈취소 건을 흐지부지 시킨 뒤 동아일보 쪽에 굽신을 떨며 사과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해찬도 동료 국회의원들로부터 사과하라는 주문을 직 간접적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해찬은 내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사과를 하느냐며 완강히 버텼다. 이후 동아일보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고 그가 교육부장관, 총리 등을 거치며 위기에 빠질 때마다 비판기사로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그에게 구원을 앙갚음 해댔다.

민주당 일각의 중도계파가 한나라당과 상생을 외치며 실용주의를 외칠 때마다 나서 정의로운 부분에서 한나라당과는 추호도 타협할 수 없다며 거침없이 사자후를 터뜨려댄 것도 오직 이해찬뿐이었다. 

그는 올곧은 정치인이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안다며 한사코 대선출마에 손사래를 쳐댄다. 이해찬 어떻게 알았는가? 그 둘이 국민에게 진정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단 두 가지의 요건이라는것을 말이다.

서울시 부시장 하려고 해서 된게 아니고, 장관하려고 해서 된게 아니고, 국회의원하려고 해서 된게 아니고, 국무총리 하려고 해서 된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고 맡은 일이다 보니 좀 더 잘해 보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하는 당신!

그렇다면 딱이다. 국민은 이제 더이상 권세에 목말라 하는 한나라당 류의 인간들에게 대통령이란 막강한 자리를 던져주고 싶지 않아 한다. 지지율은 단지 쇼였을뿐이다.

2007년 12월의 선택은 전적으로 누구의 몫인가? 그것은 온전히 국민의 몫이다. 바로 우리의 몫이란 얘기다. 그러나 역사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극소수의 수구세력과 너절한 지식인들이 그 몫을 회수해가기 위해 지금 노무현과 노무현 지지자들을 아귀처럼 물어뜯고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우리는 새로운 구원투수를 우리의 손으로 직접 뽑아 투입해야만 한다. 구원 투수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다가올 고난에 몸을 떨면서도 확고한 시대정신으로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가시밭길을 감내하며 걸어갈 수 있는자. 인생의 행적 구비 구비에 오늘의 그를 만들어온 정신의 불꽃과 화두를 놓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배움의 열정도 버리지 않고 갈 수 있는자. 그런 자만이 시대적 소명을 부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해찬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차기 선택은 이해찬이다. 나는 우리가 그를 선택해 최선을 다해 대통령 후보가 될수 있도록 그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될수 있도록 덕을 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비록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다. 조선일보류의 의제 설정력이 강하다지만 우리도 결코 만만치는 않다. 비록 우리가 친여 언론 매체의 실종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우리가 담론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만 있다면 상황은 반전되리라 확신한다.

우리를 믿고 당당하게 이해찬 당신의 마지막 남은 꿈을 펼져보라! 남북이 하나 되어 세계속으로 힘차게 웅비할 21세기 선진 대한민국호의 수장을 결코 한나라당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 그 꿈을 당신이 이루어 내보란 말이다. 그것은 시대적 요청이자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다! 남자 이해찬! 대선에 나오라!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다!

PS-2007년 대선을 앞두고 썼던 글입니다.





가정맹어호 10-12-27 16:26
 
이 글이 지금 이 시점에 올라온 것은 아직도 유효하다는 뜻이겠죠?
동쪽달마 10-12-27 23:42
 
잘 읽었습니다.
북두산 10-12-29 11:44
 
동감 백배!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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