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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허상
조회 3,276  |  추천 8  |  비추천 0  |  점수 20  |  2012-09-10 02:42
글쓴이 :   무주공산

인간은 누구나 다 이미지를 먹고 산다. 이 세상에 객관적 실체라는 건 애시당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가 스스로 세상을 제멋대로, 취향대로, 자기 생긴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각자가 다 시나리오 작가다. 

이렇게 말하면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울 것 같지만 대다수가 소수의 권력자들이 제공하는 소스들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이미지를 주입받는다는 점에서 사실은 대단히 부자유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오로지 지혜있고 자기의 본래 면목을 잘 아는 이들이나 자유로운 작가로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과거 왕조시절에는 왕조가 떠받드는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다수가 지배적 이미지를 주입받았고 지금의 이 금정정치(옛시절의 신정정치에 버금가는) 사회에서는 가장 힘이 센 금권과 정치권이 주류 언론을 통해서 대중에게 수많은 이미지를 주입한다. 당연히 자기네에게 가장 유리한 형태의 이미지들을.

때로는 대중의 취향에 잘 들어맞는 이미지들이 대중들의 내면에 강력하게 어필하여 이미지의 주인공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한다. 소녀시대, 빅뱅, 원빈, 현빈, 김수현, 김연아, 손연재 등이 그렇다. 전세계 정치권에서도 자주 이런 이미지들이 대중의 마음을 온통  사로잡는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사실은 에비타가 주역이었지만), 독일의 히틀러,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중국의 마오 등이 그러했다. 한국에서는 고 노무현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안철수가 그러하다.   

당연히 이런 식의 인기를 얻으려면 우선 어떤 방식으로든 대중에게 드러나고 노출되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이미지가 생겨날 리 없으니까. 그래서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이들은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서 자신을 노출하려고 애쓴다. 요즘 시대에는 언론을 통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야심있는 정치가들의 경우에는 선거나 각종 캠페인, 쿠데타나 혁명을 통해서 자신을 어필하기도 한다. 이상한 노출 취미를 가진 이들은 바바리맨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이들의 기괴취미도 본질상으로는 여느 인기인 혹은 정치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많은 이들이 안철수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정당에 소속된 적도 없는 이가 기성 정당 정치인들을 압도할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나 역시 일년 전에는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이곳에 그에게 호의적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내 내면에서 그에 대한 기대심리가 경계심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요즘 주류언론 일각에서 은근히 안철수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 자신의 이런 변화는 차라리 비주류 언론 일각에서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안철수 신화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작업 때문에 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철수에 대한 내 호의적인 이미지들이 생긴 경로라야 별 것이 없다. 나는 안철수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과거 단편적인 언론소스들을 통해서 괜찮은 이미지들이 생겨났고, 그러다 그가 청춘콘서트에서 이 시대 젊은이들의 고통을 제법 이해해주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그리고 황금어장에서 대단히 블링블링하게 윤색된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바람에 호감을 품었을 뿐이다.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춘콘서트 소스와 황금어장 소스가 제공해준 이미지들의 상당수가 진실에 과히 부합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그에 대한 호감이 말끔히 사라져버렸다. 제일 못마땅한 점은 그가 대선이 몇 달 남지 않은 이 국면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출마 의도를 계속 감추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바람에 일단 판단정지 상태에서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그의 진면을 계속 주시하려는 마음이 되었다. 

안철수가 그렇게 기묘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어느 면에서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정당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개인이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일단 출마한다고 하면 그에 관한 온갖 진실된 정보들과 흑색선전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올 테고 그럴 때 제대로 지켜줄 정당도 없으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그런 이유 때문에 충분한 검증과정도 거치지 않고 대선이 코앞에 닥쳤을 때 공식 출마를 하고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것은 참 이상한 일처럼 비치기도 한다. 대중이 본인의 정체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쌓인 좋은 이미지들을 그대로 안고 가기 위해  히틀러처럼 전격작전을 통해서 대통령이 되려 한다고?

그가 정말로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면 단기필마가 아니고 나름대로 꽤 많은 우호세력을 거느리고 있을 텐데 어째서 그런 기묘한 전략에 의지한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대중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언론을 통해 대중의 이미지를 조작하려는 세력의 힘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일단 대선에 나서려는 이들은 적어도 선거 3-4개월 전에는 자신의 전모를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반대세력의 온갖 방해와 책동을 딛고 일어서서 선한 의지를 지닌 상당수 국민의 지지를 얻어서 당선되고자 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과거 노무현의 선례가 있지 않은가. 대중이 때로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노상 어리석지만은 않다. 

그런가 하면 내 내면에서 박근혜는 도무지 이미지가 없는 여자다. 나는 이 사람이 도무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간 박근혜가 언론에 노출된 빈도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정도다. 이 시대에 그처럼 각광받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내 심상에 비친 박근혜는 뿌연 거울에 비친 뿌연 이미지뿐이다. 나는 그가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갖고 있는지, 앞으로 5년 동안 이 나라 정치경제사회를 어떤 식으로 이끌어나갈 속셈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진짜 개인적인 취향과 성격과 스타일까지도 알 길이 없다.

이것은 언론에 노출된 그녀의 이미지가 잘 관리된 이미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개인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 모든 정치인의 이미지들이 다 잘 관리된 이미지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이미지들 가운데서 생생한 것들이 있는 법인데 박근혜의 이미지들 중에서는 생생한 것이 극히 드물다. 아니, 몇 가지 있기는 하다. 기자들이 자꾸 질문을 했을 때 짜증스럽게 대응했던 몇 마디는 아주 생생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과거 이 사회에서는 이명박이라는 이가 어려운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이미지 정도를 넘어서 거의 믿음과 신념에 가까운 것을 지녔던 상당수 대중 덕에 대통령이 된 사례를 목도했다. 

이제 우리는 대선후보 빅쓰리 중에서 정체가 지극히 모호한 두 대선 후보를 앞에 두고 있다. 한 사람은 극구 자신의 본면모를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또 한 사람은 드러내긴 엄청 드러내는데 도무지 두루뭉술하기만 하다.(안철수는 아직까지 대선출마의사를 공표하지 않았지만 대중들의 심상에서 그는 이미 유력한 대선후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세계가 대공황의 긴 터널의 초입에 진입한 마당에 이런 이들에게 과연 국정을 맡겨도 될까?

그래서 나는 가끔 박근혜가 집권했을 때의 장면들을 억지로 떠올려보곤 한다. 그렇게 이미지를 구성할 때의 기본 재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2013년에는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는 그간 이명박 정권이 필사적으로 뚜껑을 덮으려고 애썼던 버블(엄청난 가계부채, 공기업 부채, 지자체 부채)이 본격적으로 터질 것이고, 그 바람에 또다시 금융위기가 올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이렇게 위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버블이 빠지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었던 소비가 더욱 위축되고, 그 때문에 또다시 기업구조 조정이 시작되고, 많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파산하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청년실업사태는 더 악화될 것이다. 이 때문에 계층 양극화 현상은 더 가속될 것이다.
 
셋째, 이럴 때 모든 이들의 분노와 원망은 대통령과 집권당으로 한꺼번에 쏠리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이런 분노의 물꼬를 터줘야 할 텐데, 그럴 때 가장 유력한 것은 가상적들일 것이다. 대표적인 가상적들은 당연히 북한과 일본, 중국이다. 그리고 박근혜와 그의 참모들의 속성상 가장 친숙한 70년대식 냉전논리에 기대려 할텐데 그럴 때는 이른바 종북세력 혹은 진보세력도 대표적인 국내의 가상적들이 될 것이다. 한데 진보세력 중에서 현 진보당 세력은 이미 자체내의 모순 때문에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져버려 가상적으로 쓰기에는 효용성이 크게 떨어져버렸으니 다른 세력들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넷째, 박근혜는 70년대에 퍼스트레이디로서 청와대 내에서 박정희가 능수능란하게 구사한 각종 정치 테크닉들을 뒷전에서나마 많이 경험했을 테니 그가 그런 테크닉을 구사할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내 지인의 말마따나 박정희는 그야말로 피눈물나는 역경(만주군 장교, 남로당원 등으로 정체성을 바꿔가며)을 거쳐가며 끝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대표적인 자수성가형 정치가인데 비해 박근혜는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대통령 자리를 꿈꾸는 대표적인 재벌 2세형 인물이다.     
 
여섯째, 그래서 박근혜는 도무지 가난이 뭐고 역경이 뭔지 잘 모를 것이고, 결혼도 해보지 않았기에 가사도 육아도 자녀교육도 고부간의 갈등도 잘 모를 것이고,  그래서 가난한 서민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경제난으로 절벽 끝으로 몰리는 이들의 처절한 심경도 잘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머리로 아는 것과 경험을 통해서 가슴으로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일곱째, 박근혜는 이미 이 사회에서 김대중, 노무현이 문을 활짝 열어놓은 본격적인 자유화, 민주화, 인권존중의 물결이 갖는 어마어마한 이익과 유익함을 실용주의자인 이명박보다 더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때로 이 사회가 70년대로 회귀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한 다양한 철권통치를 행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위기로 온 나라가 휘청거릴 때 그가 분노의 물꼬를 다른 데로 돌리는 일과 아울러 그 분노를 제어할만한 적절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할 때는 부득이 강제적인 수단에 호소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이럴 때 우리 사회는 또다시 권력과 대중의 폭력적인 충돌과 대립 과정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때로는 권력의 음모에 의해서 대중들이 엉뚱한 희생양들에게 증오심을 쏟아낼 가능성도 있고.

이상이 박근혜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고 그가 실제로 대통령이 될지 어떨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객관적 소스들과 내 개인적인 판단이 작용해서 만들어진 기본 재료들이다.

요즘은 너나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져 사람들이 예전처럼 여당과 야당을 꼭 집어서 지지하는 성향도 많이 엷어졌다. 새누리고, 민주고, 안철수고 간에 우선 우리 좀 먹고 살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제일 높다. 이렇게 목소리조차도 내기 힘든 이들은 만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증오심에서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정말 어렵고 어지러운 세상이다.

이렇게 어지럽고 험난한 세상에서 왜 그렇게들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여건 야건 할 것 없이 어떻게 해서든 후보가 되려고 기를 쓴다. 차기의 대통령직은 정말로 극악한 형벌을 받는 직위나 다름 없을 텐데. 대공황의 험난한 터널 속에서 우리의 이명박 각하가 필사적으로 뒤로 밀어놓은 온갖 난제를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이 5년 동안 제대로 처리해낼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서 마술은 현실이 아니라 환타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인데.

그렇게 어려운 자리에 애써 오르려고 하는 이들이라면 정말로 예수처럼 형극의 길을 가기로 작심한 훌륭한 인물이거나 본인의 유치한 공명심과 권력욕이 미래의 어려움에 대한 예상을 훨씬 더 뛰어넘는 인물이거나 뭔지 모를 복수심에 불타는 이상한 사람이거나 허황한 사기꾼이거나 할 것이다.   




포커스 12-09-13 09:42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이 12-09-17 13:18
 
꾸벅... 감사합니다... 서민은 정말 정말 너무 너무 무식해요..
언론을 먼저 개혁해야 하는데...
이교수 12-09-20 14:44
 
잘읽었습니다.
미송 12-09-20 19:37
 
공감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openmind 12-10-12 02:25
 
같은 고민을 하는 분이 계셔서 외롭지 않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정체없는 사람이나 또하나 한국시스템을 적당히 잘 이용해 정부연구기금 타먹으면서 번 돈 많은 사기꾼이 적어도 대통령은 되지 않는 나라가 되지않았으면 합니다. 지난 5년보다 더 무서운 5년이 기다리고 있다면,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절망을 하고 자살할 것이고 어린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자살행진이 되지 않을 까 합니다. 독재자의 딸을 국민스스로 대통령으로 얻어놓는 실수는 없으면 좋겠으나 워낙 암같은 존재들이 널리 퍼져 있으니 걱정입니다. 조금이라고 이런 미래를 막겠다는 사람들의 저항세력이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21세기 독립군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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