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대통합:
엄청난 기운을 지닌 변혁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대체로 우리는 공기나 물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지낸다. 그러다 산소가, 물이 부족할 때 가서야 그것들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들임을 깨닫는다. 민주주의나 정의, 자유, 평등 같은 것들도 그렇다. 그런 것들이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칠 때는 그것들의 소중함을 망각해버리곤 한다. 한나라당 사람들이 <잃어버린 10년 세월>이라고 비하하는 세월에 우리는 선진국 수준에 버금가는 대의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 경제적 안정을 누려왔고 사회정의와 복지수준도 부족하나마 그런대로 상승곡선을 그려왔다.
뉴질랜드나 북유럽국가 사람들은 자기네 수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것은 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 복지, 평등이 물과 공기처럼 차고 넘치기에 그렇다. 정치가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잘 흐르면 대체로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낮아진다. 하지만 과거 3공과 5공 때의 한국사회 사람들은 물과 공기 같은 그런 것들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흙탕물 속에서 주둥이를 수면으로 내밀고 숨을 쉬는 물고기들처럼 그런 것들을 절실히 갈구하며 고통스럽게 허우적거렸다. 그 때문에 이 세상 어느 사회 사람들보다도 더 높은 정치의식을 가졌고.
그런데 사람들은 그 십년 세월 동안 민주주의와 자유가 넘치다 보니 그런 것들의 중요성을 금방 망각해버렸다. 우리사회에는 아직 그런 것들이 굳건히 자리 잡지 못했음에도 그런 것들의 소중함을 쉽게 잊어버리고 망하지도 않은 한국경제를 살려준다고 뻥을 친 사기성 정치집단에게 권력을 너무도 쉽게 넘겨줬다. 그 대가가 어떠했는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똑똑히 보고 듣는 그대로다.
우리는 이제 3공 말, 5공 말과 같은 스타트 라인선상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제 새로 출발하면 다시는 MB 정권 때처럼 퇴행하지 않게끔 철저히 보완하고 경계하면서, 그리고 소중한 가치들을 망각하지 않게끔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보아하니 새 출발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 당장 대세라는 박근혜의 집권을 저지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아줄 가장 큰 야권 세력이라는 민주당이 도무지 믿음직스럽지 않고 애정을 보여주기도 쉽지 않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견해가 다 다르기에 함부로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내 눈에는 민주당이라는 집단이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민주당을 나보다 더 싫어하는 이들은 민주당을 한나라당의 2중대라고 극언하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손학규라는 한 개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전체가 떼로 하는 짓 때문에 그렇다.
민주당을 이렇게 보는 이들이 나나 소수 사람들 정도에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상식을 중시하는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20-40대 사람들의 상당수가 반한나라, 비민주 성향을 갖고 있다. 민주당이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이 현재 이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어젠더들에 대해 거의 외면하거나 방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은 많은 야당성 유권자들이 바라는 바를 도무지 충족시켜주지 못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곽노현 교육감 사태 때 손학규 대표가 민주당이 자칫 발목을 잡힐까봐 두려워서 그런지 너무나 쉽게 사퇴를 종용하는 말을 내뱉은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사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한진중공업 사태에서도 거의 손 놓고 지내는 것도 그렇고. 틈만 나면 이 정권과 한나라당과 검찰과 언론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 대해서 민주당은 도무지 쪽을 쓰지 못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 야당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들이 한나라 것들처럼 된똥은 안 묻었으되 멀건 겨 정도는 묻었기에 운신의 폭이 좁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는 하지만,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그들도 한나라당과 오십보 백보라는 식의 차가운 비웃음을 받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에서 운명처럼 피하기 어려운 1:1 대결구도가 한나라 대 민주당으로 고착된다면 그 선거는 야권의 필패로 귀결될 것이다. 나같아도 그런 선거에 참여해서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질 게 뻔한 선거에 뭐하러 나가서 표를 던지겠는가. 차라리 집에 들어앉아 텔레비전이나 보고 말지.
이런 구도하에서는 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펼쳐진 구도가 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난 번 대선에서 이명박과 정동영의 대결구도가 펼쳐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뒤이은 한나라대 민주 대결국면의 총선에서 어떤 참혹한 결과가 빚어졌는지 다들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 간발의 차이로라도 이명박을 눌러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실날 만큼이라도 생길 법한 대결구도는 이명박 대 문국현이었다. 그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 정동영은 오천번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명박을 이길 수 없는 구도였다. 이런 선거구도에서 진보성향의 2-40대 유권자들은 거의 선거에 흥미를 잃고 만다. 그래서 야당의 아성이라는 서울시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무더기로 낙선을 한 것이 아니겠는가. 진보성향 유권자들이 외면만 하지 않았다면 서울시에서 그렇게 많은 한나라 국회의원이 출현했을리는 만무하다.
그런데 근래 들어 이런 필패의 구도에서 새로운 변화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국민참여당, 민노당, 진보신당, 진보적인 사회세력이 힘을 합쳐 진보대통합을 이루려 하는 조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진보대통합세력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다면 지난 몇 년간 실의의 세월을 보내온 반한나라 비민주 성향 유권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과 박근혜가 무난하게 MB 정권을 계승하리라는 대세에 찬물을 끼얹고 말 것이다. 그리고 진보대통합 세력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진짜로 잃어버린 오년의 참담한 고통을 딛고 지난 십년의 업적을 다시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진보대통합의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자니 참 기가 차지도 않는다. 조승수를 대표로 하는 진보신당 사람들 중의 상당수가 마치 진보심사검열위원들처럼 설치면서 국민참여당의 참여의사를 완강하게 가로막고 나서는 걸 보자니 이것들이 미쳤나 싶은 심경이 절로 든다.
이것들이 이정희 대표와 상당수의 민노당 대의원들이 대의를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통합에 합의해준 결과를 두고 자기네가 치열한 헤게모니 다툼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둔 양 백기투항이니 뭐니 하며 오만을 떠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이것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다수 국민대중을 바보로 알고 있나? 우리도 다 알고 있다 이것들아. 이정희 대표와 민노당 당원들이 대의를 위해서 얼마나 사심 없이 임했는지, 그리고 너희가 얼마나 협소한 가치관과 이념으로 중무장을 하고 너희만의 사익을 위해서 이전투구를 했는지를.
너희는 마치 일본 TBS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보호장구도 갖추지 않고 가벼운 부상까지 당한 임수정을 링에 때려눕히고 나서 이겼다고 희희낙락해 하던 일본 개그맨들과 꼭 같은 꼴이었다. 그런 너희가 민노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왜 이래 선수들끼리" 라고 해싸면서 거지같은 반에 반쪽 승리를 거뒀다고 국민대중이 열화와 같은 박수갈채를 보내줄 것 같으냐!
이것들이 진실로, 부패한 자본주의 하에서 파편화된 개인들에 의지하지 않고 이른바 노동자, 서민들의 강철같이 조직화된 힘을 바탕으로 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원론적 신념에 입각해서 그런 짓을 하고 있다면 그런대로 이해해 줄만도 하다. 한데 가만 보면 결국은 밥그릇을 더 많이 차지하겠다는 당직자들과 대의원들의 지극히 한나라당스러운 야심과 욕망에서 그렇게 설쳐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온갖 굴욕을 참고 진보대통합에 참여하겠다는 유시민과 참여당 사람들, 그리고 진보신당 것들에게 많은 걸 양보하고 심지어 백기투항이라는 굴욕스러운 비아냥을 감수하고라도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이정희와 민주노동당 사람들의 의지는 실로 가상해보인다. 이들이야말로 반민족적이고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인 한나라당과 수구매판 세력의 대항마로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들 같다.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당신들이 가감없이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마르크스 주의 원론이나 사민주의 이론 같은 것들만 태엽 풀린 좀비들처럼 줄줄이 읊어댈 뿐 진실함과 성실함,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찌 민주주의 회복과 경제적 안정, 조세개혁에 의한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는 일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 그런 좀비들이 진보대통합을 가로막고 진보소통합을 통해 한나라, 민주, 진보소통합의 삼자 대결국면을 조성해서 뭔가 이익을 보고자 하면 그것들이 가장 먼저 망하고 이어서 온 사회가 다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것들이 바라는 게 뭐겠는가? 사회변혁? 개 잡소리지. 진보소통합, 도로민노당으로 무슨 사회변혁을 일으킨단 말인가? 기껏해야 구 민노당의 몇몇 명망가들과 조승수, 심상정, 노회찬이와 그 밑의 구진보신당 떨거지 몇 명이 국회의석 이십 석 정도를 얻어서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충족시킨다는 목표 정도가 고작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진보소통합에 분노한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등을 돌려버린다면 이루기가 참 난망한 목표다.
내가 보기에 진보이념의 순수성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리사욕을 추구하기에 여념이 없는 진보신당 일부 사람들이 노리는 것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러기에 그것들이 국민참여당의 성심을 그토록 열렬히 거부하면서까지 도로민노당을 만들려고 광분하는 게 아니겠나. 지난 세월 동안 그것들이 민노당을 박차고 뛰쳐나가서 실컷 맛본 것이라고는 대중의 철저한 무관심과 개무시와 냉소뿐이었으니 도로민노당을 만들어 의석 몇 개라도 건져서 개인의 영달을 도모하고 대중의 실날만큼의 관심이라도 얻으면 대성공이겠지.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그런 좀비들의 사욕을 너그럽게 봐넘기기에는 너무도 살벌하다. MB 정권이 지난 몇 년간 나라 경제를 하도 고약하게 말아먹어서 이제 온 사회가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질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려 있으니 누구라도 나서서 이 위기에 제동을 걸어줘야 한다.
지금 이 사회의 많은 진보성향 사람들이 진실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진보대통합이다. 진보대통합이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19.8퍼센트의 지지도로 19.2퍼센트 지지도의 민주당을 누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대통합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의 엄청난 파괴력은 그 누구도 감히 추산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 알다시피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이들은 각 종목의 현재가치보다는 미래가치를 더 크게 보고 산다. 현재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어도 미래 가치가 큰 종목의 시세가 하늘 높이 치솟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진보대통합당이라는 주식의 시세도 그렇다. 아직 상장도 하지 않은 판국에서 세 당의 현 지지도 합산 수치인 6퍼센트 남짓한 수치의 세 배나 되는 19.8퍼센트가 나왔다면 상장을 할 때의 시세가 얼마나 나올 것인지는 상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정당이 장차 집권할 가능성이 있는 수권정당으로 비칠 때의 미래가치는 지금 기세등등한 한나라를 온통 뒤덮는 엄청난 해일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보대통합당이 등장했을 때의 민주당의 운명은? 이것은 코스피 시세의 예측만큼 예측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진보대통합당이라는 종목이 상장된다면 민주당이라는 종목은 아마 수직으로 고꾸라 박힐 것이다. 며느리도 알기 어렵다는 시세를 이렇게 대충이라도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지금 이미 나와 있는 증거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야당이 어지럽게 난립할 때면 항상 가장 유력한 야당으로의 쏠림현상이 일어나 결국은 가장 크고 강력한 야당과 그밖의 아주 작은 군소정당들의 구도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어왔다는 점에서도.
아마 진보대통합당이 출현하는 그 즉시 민주당은 대지진을 맞은 일본원전들처럼 온통 뒤흔들릴 것이고 그에 따라 이념적 스펙트럼의 폭이 대단히 넓은 민주당은 급속도로 해체 혹은 와해의 과정을 밟지 않을까 싶다. 과거 김대중과 김영삼에 의해 통일 민주당이 등장했을 때 민정당의 2중대인 민한당이 급속도로 와해되는 운명을 밟았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사정이 이러하니 모쪼록 진보신당 사람들은 각성했으면 한다. 도로민노당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국회의석 몇 석을 얻고자 하는 좀비적 작태를 당장 중단하고 이정희와 민노당 평당원들(나는 민노당 일부 대의원들에 대해서도 일말의 의구심을 갖고 있다) , 유시민과 국민참여당 사람들처럼 모든 사심을 버리고 진보대통합에 임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몇몇 사람들의 소망이 아니라 이 나라의 기울어가는 운명을 바로잡고 민주주의, 경제안정, 조세정의의 확립을 간절히 희구하는 이 나라의 진보대중 대다수가 바라는 소망일 것이다.
나는 진보신당 좀비들이 제아무리 설쳐대도 진보대통합이라는 시대적 명제를 달성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시대적 지상명령이자 국민 다수의 절대적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정희 대표와 유시민 대표, 민노, 국민참여 사람들이 진보신당 일부 무리들의 냉소와 오만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고 성심성의로서 진보대통합에 계속 매진한다면 이제껏 불가능해보였던 한국사회 대변혁의 실마리가 쉽게 풀릴 것이다.
끝으로 개인적인 소망 한 가지만 첨가하자. 진보 3당 분들이시어, 제발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장으로 기꺼이 달려가게 좀 해달라. 나는 진보통합이 소통합으로 끝나서 또다시 선거국면이 한나라 대 민주의 양자 대결국면으로 쫄아붙는다면 기운이 없어서 도무지 투표장까지 걸어갈 수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