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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에피쿠로스주의자"의 감회
조회 996  |  추천 11  |  비추천 0  |  점수 60  |  2011-05-23 20:46
글쓴이 :   무주공산

한 에피쿠로스주의자의 감회
-적당한 고통은 전갈처럼 회피해야할 극독이 아니라 명약이다.



고대 로마를 지배하던 대표적인 철학사조는 스토아주의와 에피쿠로스주의다. 스토아주의는 다 알다시피 <극기와 금욕>을 강조하고 에피쿠로스 주의는 <향유와 즐김>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철학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큰 차이를 낳는다. 전자는 <페이터의 산문>에 나오는 마르쿠스 아우엘리우스 황제처럼 "삶의 모든 것이 다 부질없으니 쓸데없는 욕심에서 벗어나고  모든 애착을 다 버려라", 고 말한다. 후자는 "나의 안과 밖의 세계는 강물처럼 덧없이 흘러간다. 그러니 매 순간 내가 선 이곳, 이 순간에 벌어지는 모든 것에 최대한 충실하자" 고 말한다. 

두 철학사조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붓다가 말한 <무상>의 개념과 상통한다. 세상에 영원불변한 건 하나도 없고 다 덧없고 일시적이라는 것. 하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말하는 대목에서는 두 철학사조가 현격히 다르다. 하나는 극기주의와 허무주의 비슷하게 흘러가고  다른 하나는 매순간 생생하게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 순간을 즐기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런지 고대 로마의 한 철학자는 "스토아주의자가 에피쿠로스주의자가 될 수는 있어도  에피쿠로스주의자는 절대로 스토아주의자가 되지 않는다", 고 단언했다.
 
나는 특정한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가끔 농담삼아 나는 에피쿠로스주의자야, 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쾌락주의자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피쿠로스주의를 흔히 쾌락주의라 번역하곤 하는데 이것은 아주 잘못된 번역어다. 쾌락주의라 하면 얼핏 풍요를 즐기는 향락주의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것은 향유주의, 향수주의라는 뜻에 더 가까운 말이다. 절제있는 삶 속에서 주어진 적은 것들을 최대한 즐기고 향유하자는 것. 에피쿠로스주의에서는 <절제>라는 의미가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에피쿠로스주의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는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조촐한 삶을 즐기던 사람이어서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김치 정도에 해당하는 치즈 몇 조각만 보내주면 자기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낼 수 있으리라고 말한 바 있다.

휴일인 어제는 아내와 함께 동네에 있는 왕송 저수지를 걸어서 한 바퀴 돌았다. 개천을 댐으로 막아서 생긴 이 저수지는 꽤 커서 가끔 바다처럼 툭 트인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 바퀴를 돌면 대략 8킬로미터 정도 되니 산책하기에는 아주 좋은 코스다. 이 호수는 백운호수 같은 데처럼 개발이 과하게 된 곳이 아니어서 마음에 든다. 그저 호수로 들어오는 물만 좀 정화시켜줘서 수질이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만 갖고 있다. 날이 더워지면서 가까이 가면 물 썩은 내가 나곤 하니까.

이 저수지 한 켠으로 난 편도 1차선 도로 가에는 1-20년생 벚나무 가로수들이 죽 늘어서 있어 벚꽃이 필 때면 제법 정취가 있는데 이곳의 벚꽃은 다른 데보다 좀 늦게 핀다. 여의도보다 열흘 이상 늦게 핀다. 호수 주변에 부는 찬 바람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하고 혼자 짐작해본다.

낮에는 제법 기온이 올라 여름 기분이 났지만 저물 무렵 아내와 내가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어둑해지는 호숫가에 앉았을 때는 기온이 떨어지고 바람마저 거세져 반팔인 나는 한기를 느꼈다. 긴 팔 옷을 입은 아내는 춥지 않으냐면서 걱정을 했다. 나는 말했다. "좀 추운데 나는 가끔 이렇게 춥고 불편한 게 좋아요. 우리는 너무 편리하고 안온한 데 길들여져서 가끔 삶을 지겨워하기도 하거든요." 나는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는 편이라 가끔 아내가 내가 추워할까, 불편해할까 걱정하면 괜찮다, 마음 쓰지 말라고 하곤 한다. 

아내가 걱정하는 말을 들으니 마광수의 시 한 편이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마광수의 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의 짧은 시 하나는 상당히 공감이 갔다. <고통이 아니면 권태다>라고 하는 시. 우리는 고통스러울 때면 거기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고, 그러다 고통에서 벗어나면 잠시 해방감과 행복감에 젖는다. 하지만 그런 해방감과 행복감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런 느낌은 금방 지루하고 따분한 느낌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이 늘 안온하고 편하다는 것은 그리 좋은 게 못 된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비오는 날보다 햇살이 화창한 날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실 늘 해가 쨍쨍한 곳은 사막이다.   

기숙형 대안학교에서 일할 때 아주 인상적으로 비친 것 중의 하나는 도시에서 온 아이들이 한겨울에 기숙사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놓고 런닝셔츠 바람으로 지낸다는 점이었다. 그 아이들이 덥다면서 창문까지 열어놓으면서도 보일러 게이지를 그렇게 올려놓고 지내는 걸 볼 때마다 나는 기가 막히곤 했다. 시골에서 보일러를 그렇게 마구 때면 연료비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그 때문에 가뜩이나 열악한 학교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래, 아이들에게 실내 온도를 20도 이상 올리지 말고, 추우면 스웨터를 입고 지내라 해도 교사들이 돌아서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다시 보일러 게이지를 마구 올린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영하 이십도의 한 겨울인데도 반바지에 런닝셔츠 바람으로 밖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아니, 저 녀석들은 어떻게 된 녀석들이지? 춥지도 않나?

나는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도시 아파트에서 자란 아이들의 습관성 행태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새삼 절감하곤 했다. 어떤 아이는 내복을 입은 나를 보고 제 할아버지가 입은 옷 같은 것을 입었다고 비죽이 웃곤 했다. 그 말은 당신도 할아버지가 다 되었군요, 라는 식의 뉘앙스가 깃들어 있어 십여년 째 서른아홉 살이라고 우기던 나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내복이라는 걸 보는 세대의 관점이 참 많이 다르다는 것도 실감했다.

한겨울에는 당연히 실내온도도 내려가야 정상이고, 우리는 그 낮은 실내온도에 견디기 위해 내복을 입고 스웨터를 입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 아파트에서 사는 이들의 상당수는 추위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겨울에도 실내 온도를 한여름만큼이나 올려놓고 지내며, 그런 데서 사는 아이들의 상당수는 한 겨울에도 더워서 런닝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지낸다. 그리고 그렇게 빵빵하게 더운 실내 환경에서 사는 아이들 가운데는 툭하면 감기에 잘 걸리고 습관성 아토피 증상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요즘 사람들은 추위뿐만 아니라 배고픔도 잘 견디지 못하는 것 같다. 배가 고파지면 정신을 반쯤 잃은 사람처럼 난리를 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배가 고프다는 게 뭔지 잘 모르는 것도 같다. 늘 배고파질 사이도 없이 뭔가를 위 속에 꾸역꾸역 집어넣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고픔을 두려워하는 이들처럼 끊임없이 뭘 먹어댄다. 그 때문에 하루 두 끼 식사만 하고 군것질을 전혀 하지 않는 나 같은 이들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 먹을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느라 곤욕을 치르곤 한다.

  내가 군것질을 하지 않는 것은 치아가 좋지 않아 이에 뭐가 끼는 걸 싫어하고,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서다. 그리고 과자 같은 걸 먹으면 몸이 가려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공복일 때 조금이라도 군것질을 하고 나면 밥맛이 없어 밥을 잘 못 먹는다. 그래서 나는 군것질을 일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상당수는 군것질을 하고도 밥을 잘 먹는다.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어른들도 그러는 걸 보면 의아해진다. 저렇게 먹고도 어떻게 밥을 또 먹지?

  그런 이들을 볼 때면 속으로 좀 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배가 좀 고프면 안 되나? 배가 고프면 음식이 더 맛있어지는데. 음식의 고마움도 더 실감하게 되고. 실내가 좀 추우면 안 되나? 그러면 따듯하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진하게 실감하게 되는데. 내가 이런 얘기를 입에 올릴라치면 아내는 가끔 6.25적 얘기를 한다고 핀잔을 준다.

  아내의 말은 옳다. 나는 6.25적 생각을 곧잘 한다. 나는 6.25를 넘어서서 가끔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삼국시대적 사람들의 삶이 어떠할까를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절 사람들의 대다수가 제대로 끼니를 먹지 못했고, 그 매서운 한겨울에도 홋겹옷만 입고 생활했으리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 사람들은 도대체 춥고 배고파서 어떻게 살았을까?

  지금은 우리 경제도 많이 어려워졌지만 과거 1990년대 초중반은 단군이래의 호시절이었다. 주위에서 먹을 것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웠고 다들 자가용을 갖고서 잘 먹고 잘 살았다. 유럽에 가도 한국 관광객이 넘쳐나 유명한 관광지엘 가면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시절에는 도와주고 싶은 어려운 사람을 찾아내기가 어려워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이 어려운 이들이라고 해서 도와주려 한 이들이 20평대 아파트에 사는 이들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은 사람들의 삶이 이렇게 풍요롭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덩달아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이 등 따시고 배부르고, 편안하고 안락하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지루해진다. 별다른 자극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극을 찾아 나서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자극체감효과 때문에 자꾸 더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된다.

  아이들도 그렇다. 아이들은 일상의 자잘한 즐거움 같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이 제공해주는 짜릿한 자극을 좇아 다니며, 심할 경우에는 그런 게임에 중독되어 알콜중독이나 도박중독에 찌든 어른들처럼 때 이르게 인성이 망가지고 정신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고통이 고통이 아니고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혹심한 고통은 사람의 심신을 한없이 추락하게 만들고, 삶을 지옥처럼 여기게도 하지만 약간의 고통, 적당한 고통은 평소에는 그저 덤덤하게 받아들여지던 많은 것들을 축복으로 여기게 만든다.

  가끔 요즘의 젊은이들은, 특히 풍요로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중반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은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우리세대의 상당수가 어린 시절에 결핍과 빈곤으로 고생하다가 나이 들어 풍요를 누린 반면 그들의 대다수는 어린 시절에는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잘 먹고 잘 살다가 1997년 들어 느닷없이 닥친 외환위기로 어려운 시절을 겪기 시작했고, 그때의 어려움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해야 할 만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고생은 나이 들어서 더 잘 살 수 있는 기반이 되어주기가 쉽다.

  한데 요즘의 젊은이들은 그런 사이클이 거꾸로 되어버려 오히려 나이들어서 혹심하게 고생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풍요로움은 고생 혹은 고통에 대한 면역력을 떨어뜨려 나이 들어서 맞는 외적 환경의 어려움에 더 취약하게 만드는 것도 같다.

  요즘 2-30대 사람들의 자살율이 높고, 유명하다는 연예인들이 툭하면 자살하곤 하는 걸 볼 때마다 이런 감회가 새삼 일곤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은데 앞으로 한국에 또다시 외환위기 같은 것이 닥쳐와 한국경제가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고, 무시무시한 소비의 핵겨울이 닥쳐온다면 고생과 고통과 추위와 굶주림의 면역력이나 저항력이 약한 젊은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후쿠시마 원전사태 같은 것도 결국은 편리함과 안락함만을 좇아온 인류가 궁극적으로 당면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위기가 아닌가도 싶다. 우리 삶은 고통과 안락함의 끊임없는 사이클이 지배하는 장인데 고통은 한사코 피하고 싶어 하고 안락함은 끝끝내 좇고 싶어 하니 결국은 이런 결과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의미에서 적당한 고통은 전갈처럼 회피해야 할 극독이 아니라 양약이다. 그런 고통은 우리 삶에 생생함과 윤기와 탄력을 더해주고,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적은 것들에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낳게 한다. 그런 것들을 더 깊이 음미하고 향유할 수 있게 해주고.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5월 23일




무주공산 11-05-24 13:01
 
관리자님/ 하아, 메인에 나온 삽화가 기막히게 좋군요! 에피쿠로스주의의 핵심을 요약한 영어가 딱 들어간 것이. 그렇게 좋은 그림을 찾아주신 것에 감사!^^
슬픈한국 11-05-24 13:19
 
무주공산님//책을 내겠다는 생각으로 앞뒤가 연결되게 ,전체속에서 일부로 연결해서 글을 써나가세요. 긴글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려면 글을 쓸때부터 그렇게 써나가시는것이 좋습니다.
무주공산 11-05-24 14:20
 
슬픈한국님/ 조언에 감사합니다. 혁명의 길을 쓸 에너지를 모으는 중이랍니다.^^
꽃미남검사관 11-05-24 16:58
 
적당한 고통속에 살면서도 지금껏 불만을 가지고 살아온 것을 보면...ㅎㅎㅎ 제 자신을 한번 되돌아볼 좋은 시간을 갖게 해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하얀연인들 11-05-25 08:49
 
고통이 아니면 권태...
청빈남 11-05-25 10:31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가 에피규리즘을 접한게.. 도올의논술특강에서 였습니다. 쾌락주의가 나쁜것이 아니다 에피큐리즘자들은 금욕주의로 갔는데 .. 지속가능한 쾌락이 진짜 쾌락이므로 절제된 생활을 하게된다..여러분들은 전부 쾌락주의자 에요 ㅎㅎ 이러한것들이 나중에  절대다수의 절대행복으로 이어진다...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생명살리기 11-11-05 17:07
 
불편함을 참을줄 아는 아이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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