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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신자의 기원(起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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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7: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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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신자의 기원 -국민의 부를 갈취한 도적떼들을 신봉하는 가련한것들의 실체
박정희 얘기를 길게 하고 나서도 여전히 미진함을 느껴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그에 관한 엉터리 신화가 이 개명한 시대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게 어처구니 없어서다. 암만 생각해도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 여기는 내 사형은 이미 죽고 없는 분이지만 생전에 그 분은 가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박통이 날 살렸어. 박통이 아니었더라면 난 이미 죽었을 거야." 불교 공부를 같이 한 분이자 내 친 동기간보다 더 가까운 그분이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속으로만, 아이구, 하고 말았다.
그분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분이어서 젊은 시절 먹고 살기 위해 무지 고생을 한 분이다. 그러니 그분으로서는 장사라도 좀 해서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 무척이나 감사했고, 그런 여건을 마련해준 이가 결국은 박정희라고 여겨서 그런 소리를 했다.
박정희는 정권을 잡은 뒤 미국에서 공짜로 내준 밀가루를 선거때마다 서민들에게 푸짐하게 풀어냈고, 그 덕에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춘궁기라는 것이 있어서 봄이면 못 먹어서 누렇게 부황이 든 이들에게 담 너머로 밀가루를 던져주는 박정희 졸개들이 그들에게는 은인들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시중에 회자되는 포퓰리스트의 원조는 바로 박정희다. 그리고 내 사형같은 이들이야말로 이명박을 찬양했던 국밥집 할머니 같은 분들이다. 정말로 가진 게 없어서 굶주린 이들에게 선거 때마다 푸짐하게 인심을 쓰면 그 분들은 앞뒤 가리지 않고 그저 고맙다고 할 수밖에.
평안도 진남포에서 월남한 내 장모님은 대단한 친미주의자여서 가끔 옛 일을 회상할 때마다 열렬히 미국을 찬양하신다. 피난민으로 남한 땅에 정착한 그분들이 굶주릴 때 미국 사람들이 건네준 레이션이, 각종 원조물자가 그분들의 목숨을 살려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그 당시 굶주리던 한국인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퍼주던 미국인들이 정말로 아무 사심없이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일까? 아닐 것이다. 이런 얘기는 더 길게 할 필요도 없다. 미국인들이 그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면 박정희도 역시 그런 맥락에서 행동했을 뿐이다. 미국이나 박정희는 앞으로는 되로 주고 뒤로는 말로 빼앗아갔을 수도 있다. 그걸 고마워하는 건 당사자들의 마음이 워낙 소박하고 고와서 그럴 뿐이다. 남의 호의와 선의를 쉽게 의심하지 못하는 착한 성품을 가져서.
박정희와 그의 일파들이 되로 주고 말로 빼앗아간 이야기를 하나만 해볼까? 1973년에 석유파동이 일어나서 석유가가 어마어마하게 치솟아 오르고 한국이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이런 위기의 탈출구가 되어준 것은 석유로 떼돈을 번 중동 각국에서 일어난 건설붐이었다. 이때 이 나라의 수많은 건설 노동자들이 돈을 벌기 위해 중동으로 떠났다. 그런 노동자들 중에는 그 열사의 사막에서 죽도록 고생을 해서라도 돈을 착실히 모아 집 한 채를 사겠다고 작심한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몇년간 고생을 해서 거액의 목돈을 쥐고 귀국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대망하던 제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연평균 30퍼센트 가량의 인플레가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이렇게 극심한 물가상승은 다분히 박정권이 의도한 것이었다. 이에 관한 경제적인 이야기는 복잡하니 생략하기로 하고, 아무튼 그 당시에는 극심한 인플레 때문에 부동산 시세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아 올랐다. 그러니 그 노동자들이 중동에 가서 죽도록 고생해서 돈을 벌어와도 집값이 다시 어마어마하게 치솟아올라 자기네가 번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제 집을 팔고 중동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그 동안 번 돈으로 옛 집을 살 수도 없었다.
그럼 이런 환경에서 누가 득을 봤을까? 우선, 외환이 부족해서 쩔쩔맸던 정부였다. 그들이 벌어온 달러 덕에 부족한 외환금고를 채울 수 있었으니까. 다음으로는 집부자, 땅부자들이었다. 시중에 넘쳐나는 유동성 덕에 가만히 앉아서도 떼돈을 벌었으니까. 그리고 그 당시 가장 많은 떼돈을 번 사람들은 건설과 개발에 관한 정보를 사전에 알아낼 수 있었던 권력자들과 그 주변 떨거지들이었다. 이슬람율법이 엄격한 중동에서 술도 못마시고 고행자들처럼 죽도록 일한 이들의 상당수는 귀국한 뒤에도 여전히 전세집 신세를 면치 못한 반면에 권력주변에 기생했던 부정한 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런 이들이 손 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건설노동자들의 돈을 모조리 꿀꺽해 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박정권의 가장 추한 일면 가운데 하나는 사회정의의 회복을 부르짖으며 정권을 잡은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더 추잡하고 부패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그 당시 국민의 쌈지돈이 모여서 이루어진 은행돈 대출받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웠을 때 권력을 이용해서 쉽게 얻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자기네가 독점하고 있던 개발 정보들을 이용해서 부동산 투자를 해 떼돈을 벌었다.
그들은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결국 그들이 번 돈은 모두가 국민의 돈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서 국민의 부를 합법적으로 강탈해간 자들인 셈이다. 그 시절의 권력자들이 애초에는 땡전 한푼 없는 가난한 군바리들이었던 주제에 무슨 돈이 있어서 천문학적인 재부를 긁어모을 수 있었겠는가. 지금의 아파트 투기의 원조는 바로 그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박정희 신도가 될 수밖에.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모 일간지에 당시의 실력자들 중의 하나였던 이후락이 잠시 실권한 동안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아주 당당하게 "나는 박정희 신도입니다," 라고 했다. 그 기사 제목이 바로 그랬다. 이후락이 왜 종교 교주도 아닌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들었을까? 그야 다시 권력의 자리에 복귀하고 싶어서 아첨한 것이겠지만 사실 내심으로도 반쯤은 그렇게 믿지 않았을까 싶다. 저를 평범한 군장교에서 대한민국을 부르르 떨게 할 수 있는 막강한 청와대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해주셨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크겠는가.
어디 이후락 뿐이겠는가. 박정희 덕에 국민의 재부를 갈취해서 떼부자가 된 권력의 찌끄러기들이 오죽 많겠는가? 박정권 때 정권과 쿵짝을 잘 맞춰서 세종로에 거대한 빌딩을 지은 조선일보 사주 방씨 역시 박정희가 얼마나 고맙겠는가? 그러니 그런 이들이 모두가 합세해서 박정희 신도들이 될수밖에.
나는 지금의 이 박정희 신드롬은 바로 국민의 재부를 합법적으로 갈취해먹은 그 박정희 신도들이 날조해낸 것이라 여긴다. 그들은 박정희 덕에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으니 대대로 박정희에게 감사해도 모자랄 것이다. 친일파들은 국민을 희생시켜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라 후대에 욕을 실컷 얻어먹었지만 그자들은 국민을 희생시켜서 영화를 누렸음에도 욕을 별로 얻어먹지 않았으니 박정희가 얼마나 고맙겠는가. 욕을 먹기는커녕 이 나라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명예까지도 얻고 있지 않은가.
박정희는 일제 36년 지배기간의 딱 반에 해당하는 18년간 집권했는데 그 기간은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집권기간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길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장기집권 기간 동안 그들의 세력은 이 사회의 최상층부를 형성해서 아무리 뿌리 뽑으려 해도 뽑을 수 없는 권력의 중심축이 되었고 여론주도세력이 되었다. 공화당에서 민정당, 거기서 다시 한나라당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온 지금의 수구 보수 정치권력 집단,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재벌 기업들, 조중동과 KBS와 문화방송 같은 언론마피아들, 고위관료집단, 부패한 사학족벌들,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법조계 사람들과 타락한 어용학자들.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발한 이들이 바로 이런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노무현을 자기네가 오래도록 지배하던 나와바리에 함부로 들어와서 설쳐대는 상고 출신의 햇내기처럼 여기고 사사건건 눈꼴 시어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무리들은 다같이 야합해서 권력과 정보와 은행돈과 지위를 독점하고, 온갖 비열한 방식을 다 동원해서 국민전체에게 돌아갈 재부를 합법적으로 갈취해먹었다. 그래도 산업화로 나라 전체의 파이가 커진 덕에 내 사형이나 국밥집 할매 같은 서민들에게도 일부 적하효과가 일어나 착하디 착한 그들은 박정희 덕에 굶어죽지 않았다고 훗날까지 두고두고 박정희 찬가를 읊어댔고 지금도 가끔 그렇게 읊어댄다.
박정희를 정점으로 한 수구보수 파시스트 세력들은 요행히도, 국민 전체가 일제 식민지 시절과 6.25라는 대 재난을 겪어서 너무도 참혹한 시절을 살고 난 뒤에 집권한 덕에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재부의 대부분을 갈취하고도 이렇게 칭송을 듣는다. 과거에 너무도 힘겨운 세월을 산 이들은 그들이 먹고 남은 떡부스러기만 던져줘도 감지덕지 했으니까.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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