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사이트맵

대문칼럼 토론 인물 담론 생활 포토 지역교류 사회은행 추천링크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AUTO

 


4,645

156

719

3,678

38



  격암
슬픈한국
 



  이쁜돌의 농촌이야기
플라이의 텃밭이야기
 



  해인의 생존인문학  



  무주공산의 정론직필  



  쭈구리의 결혼일기
fishmool의 기업일기
사랑이의 여행일기
촌아이의 어촌이야기
 



  박정희,그때 그 시절  



  그림자 경제학
한국을 생각한다
 



  Bookcafe  



  현장 스케치  




5.16 군사쿠테타 소회
조회 1,098  |  추천 12  |  비추천 0  |  점수 70  |  2011-05-16 15:47
글쓴이 :   무주공산

5.16 군사쿠데타 50주년을 맞은 소감
-박정희청산의 첫걸음은 박근혜극복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 1

  돌아가신 선친을 거론해서 좀 꺼림칙하기는 한데, 나는 <대위의 아들>이었다. 선친은 일제말에 사병으로 징집되었다 해방을 맞은 뒤 1947년에 국방경비대에 들어가신 분이라 제대로 교육을 받기만 했다면 최소한 대령 계급장 정도는 달았을 분이 무학자라는 약점을 안고 있어서 끝내 소령계급장도 달지 못한 채 전역을 하셨다. 선친은 서구식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고 한학과 일제적 잔재가 강하게 남은 군대에서 받은 교육이 전부라 좀 단순하셔서 가정도 군대내무반처럼 경영하셨다.

  그 때문에 우리는 거실에서 편히 앉아 있다가도 아버지가 등장하면 조건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서곤 했다. 아버지만 나타나면 우리는 항상 긴장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퇴장하면 그제야 겨우 어깨를 늘어뜨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우리만 보면 그냥 지나가시는 법이 없었다. 항상 뭐라도 지적을 하고 가셨다. 다탁에 발올리지 마라, 늦잠 자지 마라, 옷 꼴이 그게 뭐냐, 저 옷 당장 네 방에 갖다 두지 못할까, 그 똥털 깍지 못할까, 당장 면도해, 등등.

  아버지는 가끔 우리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그건 대화가 아니었다. 우리더러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하시면 우리 형제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 그러다 모처럼 누군가가 말을 꺼내면 아버지는 딱 한 문단만 들으신 뒤 그 말을 딱 끊고 일장훈시를 하셨다. 그 일장 훈시는 대체로 한 시간 가량 계속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속으로는 거의 듣는둥마는둥 했지만 겉으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는 척 했다. 그건 절대로 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중대장님 훈시요 교시의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논리는 내 이성을 설득할 힘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지독하게 따분하고 지겨웠다.

  이런 일방통행식 가정교육, 내무반 식 가정환경을 나는 무척이나 싫어했다. 나는 학교와 책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의 세례를 흠뻑 받은 신세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드러내놓고 아버지에게 대들거나 반항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사병이 중대장에게 까불었다가는 골로 간다. 그리고 자칫하면 학교도 못다니고 쫓겨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나 자신을 억누르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끝없이 깊어져갔다. 나는 늘 우리 집안의 시민혁명을 꿈꿨다. 절대적 집권자인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부모와 자녀가 평등한 관계를 이룩하고 싶은 꿈을.

  

# 2

  묘하게도 당대의 한국사회는 박정희라는 또 다른 중대장이 다스리는 군대내무반 같은 사회였다. 박정희는 어떤 인간도 자신을 비판하거나 대드는 꼴을 참지 못하는 인물이어서 그 앞에서는 그저 모두가 찍소리하지 못하고 복종했다. 박정희가 자기네를 친애해준다고 믿었던 김성곤(그는 쌍룡재벌의 주인이자 당대의 유명한 국회의원이요 공화당의 실력자였다)을 포함한 사인방이 잠시 까불다가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는 역사가 잘 말해준다. 그 당시 시중에는 김성곤이 발가벗긴 채 두들겨 맞고 수염이 모조리 뽑혔다는 소문이 은밀히 전해졌는데 훗날의 증언들로 미루어 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박정희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제 뜻대로 경영하는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사람들의 의식, 유행, 대중문화, 옛문화에까지도 간섭하려 들었으며, 심지어는 그 못난 필체가 전국의 상당수 기념물들에서 현판글씨나 명문의 형태로 등장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에게 아부하는 자들이 그에게 붓글씨를 부탁했기에 그런 웃지 못할 현상이 빚어졌다. 그는 개인적으로 단청을 싫어해서 한동안은 우리의 빛나는 전통유산들의 일부가 그가 좋아하는 일제풍의 달걀색으로 도색되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게다가 정부에서 제공해준 새마을 노래같은 관제노래들은 전형적인 일제 군가를 닮은 왜색 가요들이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그런 일본군가같은 노래들도 속절없이 들어야 했다.  

  박정희 역시 자주 국민과 대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의 대화라는 건 사실 우리 선친의 경우처럼 일방통행식 훈시의 형태를 띤 일장연설에 불과했다. 중대장님 같은 그가 연설할 때 사병같은 국민들은 항상 차렷 자세로 서서 경청해야 했다. 나중에는 길을 가다가도, 영화보러 극장에 가서도 그의 상징으로 도용된 애국가가 나오기만 했다 하면 그 당장 차렷 자세로 서서 숨죽이고 서 있어야 했다. 안 그랬다간 즉심에 회부되어 경찰서 깜방에 갔다. 부모에게 충성, 나라에 충성, 가카에게 충성! 이 사이비 충효교육, 충성 삼위일체가 박정희 시대의 국민교육을 이끌어간 대표적인 지배이데올로기였다. 그래서 우리는 군바리도 아니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하며 충성!, 했다.

  심지어 박정희는 국민의 꿈자리도 지배해서 일부 국민들은 꿈 속에서도 박정희의 악몽에 쫓겼고, 잠재의식에서조차도 말 한번 잘 못했다가는 남산으로 끌려가 고문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빛나는 성장기의 18년을 꼬박 박정희와 우리 선친 치하에서 살았고, 선친은 혈육이라 차마 심하게 미워할 수가 없어서 노상 박정희만 증오했다. 그자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라디오로 흘러나오기만 하면 속으로 "누가 저 ** 안 죽이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1980년 10월에 그자가 총탄에 맞아죽었을 때 나는 황지우의 시 한 귀절처럼 "너 죽을 줄 내 알았다" 고 생각했다.

  우리 군대는 이 나라의 안전을 담보해줘온 참 중요한 집단이지만 나는 선친과 박정희 탓에 집안에 있거나 집밖에 있거나 늘 내무반에서만 살아야했고 그 때문에 과거에는 군대를 무척이나 증오했다.

   

# 3

  얼마 전 <더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라는 데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시대에 대통령으로 다시 뽑고 싶은 인물 1위가 박정희라는 결과가 나왔다. 1960년대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나는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겠지만 이 시대에 다시 박정희라니, 사람들이 돌았나 싶었다. 그 조사기관은 안희정이 설립주체라 신뢰할 만하니 문제는 그런 답을 한 사람들이다.

  나는 그 사람들이 실제로 꼭지가 홱 돌았다고 믿는다. MB가 하도 한국경제를 말아드신 덕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보니 히틀러같은 인간이라 해도 경제만 살려준다면 환영하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게다가 지금의 3-40대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박정희의 경제성장 기적이라는, 터무니 없이 날조된 신화에 세뇌된 이들도 적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보수적인 영남의 풍토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들도 좀 있겠지.

  그런 보도를 보면서 엄청난 전쟁배상금과 천문학적인 인플레로 허덕였던 바이마르 공화국 치하의 독일인들의 경우가 생각났다. 그들은 자기네를 그런 궁지로 몰아넣은 프랑스인들과 악덕 유대 금융자본가들에게 복수해줄 영웅의 출현을 고대했고 히틀러가 혜성같이 등장하자 그에게 올인했다.

  쥐만 잘 잡으면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상관없다고 한 텡 샤오핑도 생각났다.

  그래 MB가 그리도 싫다고 해서 쥐만 잘 잡으면 검은 고양이든 하얀 고양이든 정말로 상관없나? 박근혜든, 허경영이든, 이재오든, 김문수든, 오세훈이든 다 상관없나? 쥐를 잡아서 경제만 잘 살리면? 쥐보다 더 끔찍한 검은 고양이 때문에 온 나라가 다 거덜이 나고 지금보다 더 큰 참화를 겪을 위험성이 있어도?

  뇌는 어디다 달고 다니는지 참.

   

# 4

  박정희가 국민학교 선생질을 하다가 칼을 차고 싶어서 일본왕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만군장교가 되었다가, 해방후 세상이 좌파 세상이 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자 재빨리 남로당원이 되었다가 훗날 다시 사세가 불리해지자 동료당원들 명단을 넘겨주고 제 목숨 보전한 이야기야 이미 널리 이야기된 바니 여기서는 재삼 언급하지 말자. 그가 더없이 보기 드문 기회주의자라는 것이야 개인적인 문제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그런데 그가 마치 잿더미 속에서 경제를 회생시킨 산업성장의 거인이라도 된 양 떠받드는 신화는 여간 수상쩍지 않다. 박정희를 공격하고 비판하던 이들 중에는 경제성장이라는 대목에서만은 그래도 박정희의 공이 적지 않다고 물러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는 그의 성공담에 이의를 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도 그렇다. 5월 15일자 경향신문에 인용된 성공회대 김동춘과 연세대 박명림의 대담 내용은 그런 주장을 잘 요약해주고 있다. 좀 길지만 그 내용의 일부를 인용해보기로 하자.

  "박명림 = 박정희 시기의 산업화에 대해 인정한다. 다만 너무 신화화되고 과대평가됐다. 객관성을 위해 세 가지 비교준거를 들겠다. 먼저 박정희 시기와 유사한 초기 산업화를 이뤘던 나라들과 비교할 때 박정희 정부만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둘째 50년대 북한의 산업화와 비교해도 경제지표만으로는 박정희 시기가 특별히 우월하진 않다. 끝으로 87년 이후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그 단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박정희 정부 못지않은 경제적 성취를 보여줬다.

종전 및 한·미동맹으로 인한 전쟁재발 가능성 종식과 국가역량의 국내발전에 집중할 여건의 도래, 토지개혁 성공으로 인한 산업화 저항세력으로서의 지주계층 몰락, 학교·학생·언론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교육기적과 국민교육 등 이른바 '산업화의 가능 조건들'은 전부 이승만 정부에서 이뤄졌다."

  "김동춘 = 한국의 근대화는 거시적으로 미국이 전후 동아시아 반공기지 구축에서 일본을 축으로 하고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편입시킨 플랜 속에서 가능했다. 미국이 한국의 수출품을 구매해주는 '초청에 의한 발전' 플랜 속에 들어있다. 그 플랜에 부응한 세력이 군부다. 70년대 중화학공업화 역시 냉전체제 변수, 북한 변수, 즉 안보 위기와도 연관돼 있다. 결국 북한·미국 변수를 빼곤 60년대 박정희의 근대화 전략을 설명하기 어렵다. 60년대는 세계사적으로 경제 활성에 좋은 조건이어서 많은 나라가 5% 이상 성장했다. 일본자본과 대기업을 축으로 하는 성장전략도 미국의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중략... 또한 우리가 한국 근대화 성공 요인을 역사에서 찾는다면 구한말 한국에 왔던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 등이 말했던 '학정만 제거되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나라'라고 했던 전근대 사회에서의 문민주의 전통, 효율적 관료체제, 법체계 등 이미 아시아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지긴 했지만 권력이 이용할 역사적 자원이라는 인프라가 있었다. 군부가 등장해 새로 창조한 게 아니라는 거다."

박정희의 산업화에 대해 이들은 이미 조선조의 문화적 전통과 정신적 기조, 이승만 정권 시절의 교육체제 정비와 우리민족 특유의 교육열 덕으로 산업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밑바탕이 마련되어 있었고, 국제적인 경기 호황, 미국과 일본의 지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가능했을 뿐 기적은 아니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고 미화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5

김동춘과 박명림은 박정희가 남긴, 산업화의 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과를 지적해주고 있다. 다시 그들의 주장을 인용해보기로 하자.

"김동춘 = 해방 정국에서 한국사회에는 이념에 기초한 정치, 정당의 활성화, 지방자치, 주민참여 등 풀뿌리 민주주의의 싹이 있었다. 그런데 5·16 이후 중앙정부가 이를 억압하고 한국사회를 중앙 관료지배, 대통령지배의 중앙집권구조로 재구조화하기 시작했다. 그게 복원되지 않고 오늘에 이른다. 박정희 정권은 지방을 식민지화했고, 정당정치의 가능성을 억눌렀다. 그 이후 오늘까지 국민들이 자신을 진정으로 대표할 사람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중앙에서 내려온 원하지 않는 후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성적인 정치 불신, 정당의 이합집단, 정치적 책임성의 부재상황이 지속된다. 민주정부 시기에 그것을 살려보려 했지만 시기가 짧았고,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를 옛날로 되돌려 놓았다.
- 중략 -

한국전쟁으로 좌익만 제거된 게 아니라 공익에 대한 열정과 감각을 지닌 엘리트들도 동시에 제거됐다. 5·16 쿠데타 세력 중 진정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권력의지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함께 지닌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비전과 식견, 도덕성을 갖춘 사람들이 정치무대에서 버틸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끊임없이 기성 권력구조에 편승하고 중앙정보부의 폭력에 공포감을 갖도록 유도했을 뿐이다."

"박명림 = 박정희는 교사와 군 지휘관의 경험에 바탕해 자원을 동원·결집해서 국가목적을 달성하는 데 상당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국가를 학급이나 사단처럼 운영했는데 학급담임·군사단장·국가대통령은 그에게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모두 훈육, 훈시, 명령의 위치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 과정에서 박정희는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전통인 문민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사유양식과 행동체계를 군사주의와 시장주의·신중상주의로 완전히 뒤집었다. 이 두 가지가 사회주의 몰락 및 북한탈락 이후 신자유주의와 만나면서 시장전체주의로 나아갔다."

"김동춘 = 18년 동안 한 지도자가 운영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18년 국가 운영은 상당한 지속성과 안정성이 있다. 그 이후 어느 누구도 그걸 대신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박정희가 18년 동안 연속성을 갖고 통치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채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고서 왜 박정희처럼 못하느냐고 말한다. 또한 60~70년대에는 재벌이 이끌면 적하효과를 나타낼 수 있었다. 노동자, 농민들이 힘들긴 했지만 가시적 변화가 흘러내려왔다. 그런데 90년대 이후에는 서비스 산업으로 구조가 바뀌었고, 과거처럼 재벌이 이끈다고 중소기업과 노동자·농민에까지 흘려내려오는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박정희 때는 됐는데, 지금은 왜 안되느냐고 하는 것은 여전히 60~70년대처럼 경제가 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나오는 말이다."

 

# 6

박정희의 과에 대해서는 위 두 분의 말이 거의 모든 걸 다 말해주고 있다. "공동체나 개인 삶에서 목적의 추구과정에서 준수돼야 할 인간적 도리, 수단의 중요성은 그 이후 무너졌다. 또 성공제일주의·성장주의·총량주의·돌진주의가 팽배하며 인간존중, 정신, 격조, 품위가 실종됐다."는 박명림의 말, "박정희의 경제성장 성과를 인정하더라도 사회의 정의와 법치 도덕을 형편없이 무너뜨린 게 가장 나쁘다. 법이 정치의 시녀가 되고 약육강식 체제를 만들어냈다."는 김동춘의 말이야말로 박정희가 이 땅에 남겨좋은 가장 좋지 않은 유산을 핵심적으로 요약해준다.

관심있는 분들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5152145205&code=940100

를 참고하시길.

 

  # 7

  김동춘 박명림 두 분이 박정희와 5.16 쿠데타에 관해 거의 모든 걸 다 이야기해줬지만 나는 거기에 한두 가지를 더 첨부하고 싶다.

  박정희가 초창기에 한일청구권 자금으로 받았던 돈은 경제개발 초기에 금방 바닥이 났다. 당시는 수입대체산업을 일으키는 게 시급할 때여서 경제개발을 해도 수입이 자꾸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당시는 미국으로부터 적지 않은 원조자금을 받아도 계속 만성적인 수입초과 현상을 빚고 있었다. 박정희가 이런 외환부족 사태를 해결할 방안으로 찾아낸 대표적인 경우들이 바로 월남파병, 기생관광, 중동특수였다. 집권 초기에 많은 여성과 남자들이 독일에 간호사와 광부로 팔려간 경우도 그렇고.

  우리의 꽃다운 청년들이 베트남에 가서 목숨을 담보로 하고 벌어들인 달러, 우리의 여성과 남성들이 독일 병원이나 탄광에서 고된 노동을 해서 벌어들인 마르크화, 꽃다운 젊은 여성들이 당시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누렸던 일본인들에게 몸을 바치고 벌어들인 엔화, 그리고 수많은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 열사의 사막에서 거의 고행하듯 노동을 해서 벌어들인 중동 달러가 결국 한국의 외환부족 사태를 최종적으로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더라면 박정희는 산업화 하는 도중에 외환이 부족해서 결국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을 것이다.

  물론 베트남이나 중동에 간 이들과 일본인 상대의 기생이나 현지처들의 대다수가 나라를 위한다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그렇게 해서 어려운 나라 경제를 구했고, 박정희와 공화당을 구해주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박정희가 제아무리 산업화를 열심히 추진하려 해도 이런 과업을 떠받쳐줄, 잘 교육된 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잘 교육된 산업인력의 존재 유무가 세네갈이나 잠비아,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들과 한국의 차이를 낳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6-70년대 한국 산업화 기적의 진정한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학문을 숭상하던 조선조의 문민적 전통, 개인적 사리사욕을 좇는 소인배들과는 달리 공익과 공동선을 지향하는 군자의 심성을 높이 쳤던 전통, 혹독했던 일제하에서나 가난했던 이승만 정권 시절에도 자녀 교육열을 놓지 않았던 이땅의 학부모들, 6.25 같은 미증유의 재난 속에서도 가마니를 깔고 학생들을 지도했던 수많은 교육자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목숨과 몸을 담보로 내놓았던 이 땅의 이름없는 수많은 청년들과 젊은 여성들, 건설노동자들, 그리고 박정희가 과도하게 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견제하고 압박했던 시민운동가들이야말로 바로 그들이 아닐까 한다.

 

# 8

다 알다시피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허구와 폐해에 대한 통렬한 반박을 통해서 유명해진 이다. 그런데 그의 책들에서 그는 신자유주의의 해독에 대한 적절한 대처의 예로 박정희의 경우를 들곤 한다. 그래서 그런 대목을 읽다보면 박정희가 상당히 지혜롭고 현명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박정희가 바로 그렇게 한국 시장을 열심히 지켜냈기에 오늘의 한국경제가 있었다는 식의 감회를 갖게 되고.

당시 산업생산능력이 약했던 한국이 선진공업강국들과 맞대결을 할 수 없는 사정이었으니 박정희가 여느 후진국 지도자들처럼 보호무역주의적인 기조를 유지하려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경쟁자가 된 미국도 그 당시에는 이제 막 공업화의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같은 피원조국을 도우려고 하면 했지 억지로 무장해제시키려 들지는 않았다. 

한데 나는 박정희가 한국시장을 지키려고 노력한 데는 그의 독선적이고 아집적인 퍼스넬리티도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던 의도하고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요소다. 박정희는 절대주의 시대의 전제군주 같은 퍼스넬리티를 가진 사람이어서 그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가 왜 한국시장이라는 케이크를 선진강국들이 제멋대로 먹게 내버려두려 하겠는가. 현실적인 여건상으로도 그는 자유무역에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대단히 독점욕이 강한 기질도 가진 사람이었기에 남이 자기 것을 함부로 건드리는 것을 도저히 참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가 지금처럼 신자유주의가 대세인 시점이라 해도 그는 제것을 죽자고 틀켜쥐려 했을 것이다.  

박정희가 원래 그런 사람이어서 본능적으로 그렇게 행동한 것뿐인데 장하준은 박정희의 정책이 마치 굉장한 지혜와 비전을 바탕에 둔 것인양 미화하는 것만 같다. 이런 견해는 그저 내 개인적인 소회이니 믿거나 말거나다.


# 9

  나는 이성보다 감성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정치 사회 경제적 현실을 직시하고 바람직한 앞날과 비전을 그릴 때는 제발 감성보다는 이성을, 머리를 좀 써줬으면 한다. 그래서 감성적으로는 검은고양이가 제 아무리 매혹적으로 비치더라도 하얀 고양이를 선택해줬으면 한다. 독일인들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제아무리 힘들었더라도 히틀러를 선택하는 것 같은 끔찍한 우를 범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처럼 지금이 제아무리 힘들더라도 제2의 박정희 같은 인물은 제발 선택해주지 말았으면 한다.

  박정희는 온갖 불의하고 부패한 방법으로 제 개인의 영달과 권력욕을 추구한 이고, 이 나라 국민의 피와 땀과 자궁을 팔아먹은 덕에 겨우 산업화라는 대명제를 간신히 달성한 이고, 그 과정에서 이 나라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공동체 정신, 정의와 선의, 세상을 참답게 변혁하고자 하는 열정을 말라버리게 한 이다.

  그가 18년간 집권하면서 남긴 가장 나쁜 유산은 젊은이들조차가 세상은 어차피 부패하고 타락한 곳이요, 밀실야합과 부정한 방법을 통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부정한 방법으로라도 돈과 지위를 얻어 성공하는 것만이 인생의 승리라는 왜곡된 사고방식들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박정희의 유산 역시 일제의 유산처럼 뿌리 깊은 것이기에 하루아침에 청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박정희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기억하면서 늘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야말로 우리 안의 파시즘, 우리 안의 탐욕과 독선과 아집, 우리 안의 검고 어두운 원시적 충동, 우리 안의 허무주의의가 밖으로 내비쳐진 대표적인 상징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청산의 첫걸음은 우선 박근혜의 극복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5월 16일




슬픈한국 11-05-16 17:22
 
글 정말 길게 쓰시는군요.
왕소심 11-05-16 18:00
 
무주공산님 번호로 나열되는 글이 참신하기도 하고 읽기도 좋아요.

제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한번씩 박정희에 관한 논쟁이 나오는데,
경제를 살렸다는데 집중하며 박정희 찬양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식을 바꿨어요. 전.
"이 땅의 젊은이들의 피로 경제발전을 했다. 그래 고속도로 잘 뚫었다고. 박정희가.
그런데 수첩 없으면 안되는 박근혜가 아버지 뒤를 계승해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어찌 세운거야?
그 수첩내용을 채워주는 사람은 누군데?
대한민국 정치에 수첩공주가 한 일이 뭐가 있나?
급박할때 그 수첩 벼락 맞거나 바람에 날아가버리면 어떻게 되는건데? 수첩 주워 올때까지 기다려? 여기저기서 뻥뻥 터지는데?" 이렇게.............
========
번호로 나열되니 (아는부분들)건너뛰면서 읽기가 좋았어요. ㅋㅋㅋ
무주공산 11-05-16 19:03
 
슬픈한국님/ ㅎㅎㅎ 인용을 하다보니 좀 길어졌네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글이 길면 읽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많죠.^^
왕소심님/ 번호로 나열되는 글이 좋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박정희 이퀄 경제살리기는 뿌리 깊은 신화라 쉽게 결론이 나기 어렵지요. 18년 동안 해먹었으니 그 뿌리가 얼마나 깊겠어요. 저도 글로서 쓸 뿐이지 박정희 신도들하고 논쟁은 아예 안 합니다. 신도들의 특징은 굳건한 신앙이니 그걸 논리로 어떻게 꺾겠어요.
Charleston 11-05-16 21:51
 
좋은 글이라
길다고 느낄 새 없이
한숨에 읽어 내려왔습니다.

저도, 번호로 나누어진 단락은
긴 글을 읽기에 참 좋은 듯 합니다.
협박아짐 11-05-17 10:07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돌아이 11-05-17 16:00
 
1961년 5월 12일자로 발표된 장면 정부의 경제개발5개연계획 국토개발사업, 건설부와 경제계획원 설치 등은 장면정부에서 구상된 것이 실행된 것이지요.
무주공산 11-05-17 16:12
 
돌아이님/ 맞습니다. 박정희가 민주당 플랜을 그대로 도용해먹었죠. 어쨌거나 옳은 걸 실천에 옮겼으니 잘한 것이긴 한데 박정희가 애초부터 그런 원대한 플랜을 가졌다고 오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죠.
복뎅이 11-05-17 17:43
 
저는 어릴때 대통령은 무조건 박정희가 하는줄 알았어요..ㅎㅎㅎ.초딩때까지만 해도 빨갱이가(간첩)올까봐 산길을 혼자 가지도 못했고 항상 수상한 사람이 있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간첩신고에 대한 공포때문에 불안했던기억이납니다...님글 항상 잘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올드보이 11-05-18 01:37
 
정말 잘봤습니다.
일호 11-05-18 22:49
 
글이 길었습니까? 전 모르겠습니다.
김동춘과 박명림의 대담은 공감이 갑니다.
잘 보았습니다.



공지 이 게시판은 무주공산님 전용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0 0 18129 02-07
49 이미지의 허상 (5)
무주공산
8 20 3276 09-10
48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 (3)
무주공산
11 60 975 02-12
47 안철수열풍 단상 (8)
무주공산
20 114 2456 09-07
46 엄청난 변혁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10)
무주공산
17 90 1581 09-04
45 묘하게 돌아가는 세상 (2)
무주공산
17 110 2306 08-06
44 사실이라고 집착해도 병이고 비었다고 집착… (5)
무주공산
14 96 1590 07-16
43 서울하늘 봤나? (10)
무주공산
7 30 1040 06-10
42 개는 흙덩이를 쫓아가고 사자는 주인을 문다 (3)
무주공산
5 20 1023 06-09
41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 (3)
무주공산
7 40 1109 05-27
40 한 "에피쿠로스주의자"의 감회 (7)
무주공산
11 60 996 05-23
39 박정희 신자의 기원(起源) (6)
무주공산
23 120 1710 05-17
38 5.16 군사쿠테타 소회 (10)
무주공산
12 70 1099 05-16
37 MB는 백신이다 (9)
무주공산
13 90 1592 05-14
36 4년과 36년 (6)
무주공산
6 60 883 05-09
35 주인이 없으면 나라가 망한다 (12)
무주공산
24 90 2458 05-04
34 반란의 조짐 (5)
무주공산
11 48 1860 04-27
33 세상의 모든 아침 (2)
무주공산
11 60 1183 04-06
32 싸구려 실용주의가 판치는 사회 (1)
무주공산
9 40 991 04-05
31 얼렁뚱땅 정치 (1)
무주공산
9 70 1031 04-03
30 한국은 후진국이다 (5)
무주공산
14 126 2546 04-01
29 마음공부는 도덕, 윤리와 아무 상관없다 (1)
무주공산
8 60 1109 04-01
28 마음은 컨트롤할 수 없다 (2)
무주공산
7 50 1034 03-30
27 남의 노래를 부르지 말라 (4)
무주공산
9 50 1136 03-28
26 비를 맞아도 비 맞은 자가 없다 (4)
무주공산
7 50 1312 03-26
25 붓다의 가르침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7)
무주공산
13 70 1141 03-25
24 참다운 혁명의 길 (9)
무주공산
9 50 1118 03-06
23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드는 몇가지 의문과 느… (1)
무주공산
9 34 1098 03-01
22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4)
무주공산
28 124 2453 02-23
21 이 시대의 화두는 웰빙이 아니라 생존이다! (14)
무주공산
44 156 3202 02-18
20 요즘 젊은이들은 자식 사랑할 줄도 모른다구? (1)
무주공산
18 54 1291 02-09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