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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과 36년
조회 883  |  추천 6  |  비추천 2  |  점수 60  |  2011-05-09 14:10
글쓴이 :   무주공산

# 1

프랑스의 비시 괴뢰정부는 불과 3년 정도 존속했다. 일제는 한국을 36년간(사실은 35년간이다) 지배했다. 프랑스의 전 영토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기간을 다 합쳐도 4년 정도에 불과했다. 4년간의 치욕적인 독일 점령기간이 끝난 뒤 프랑스 인들은 독일군에게 부역한 이들을 모조리 색출해서 법에 따라서 제대로 처벌할 수 있었다. 그런데 35년 동안 일제에게 지배당했던 한국에서는 아직까지도 일제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째서 그럴까? 한국인들은 민족정신이 약해서?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서? 친일파들의 힘이 너무 세어서?



# 2

내가 존경해마지 않았던 역사학자 강만길 선생은 한국 근대사 강의 시간에 우리에게만 살짝 귀띔해줬다. "일제 치하에 국내에서 활동했던 독립지사들 중에서 끝내 친일하지 않은 이들은 좌파 사람들 뿐이었다. 우익 인사들은 일제의 집요한 설득과 탄압으로 결국은 거의 대다수가 친일을 했고 끝내 친일하지 않은 사람들은 운좋게도 일찍 사망한 이들뿐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반공의 서슬이 시퍼랬기에 선생은 내놓고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당신이 연구한 실제의 자료들은 그런 사실을 웅변해주고 있었다.



# 3

백범일지에 보면 김구 선생이 일본경찰에 체포된 뒤 일본인 형사가 선생에게서 죄상을 자백받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면서 선생을 고문하는 걸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저들은 남의 나라를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 저토록 애쓰는데 나라를 빼앗긴 우리는 과연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나?" 그러면서 선생은 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제 경찰들보다 더 열심히 애쓸 것을 다짐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80년대 , 내 지인 하나는 김근태 고문 사건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근안에게 잡혀서 남영동 분소에서 온갖 고문을 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고문으로 반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도 그에게 감탄했다고 한다. 제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서 저 자는 저토록 밤잠을 안 자며 애를 쓰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이 나라 민주화를 위해서 저 사람 만큼 애를 썼을까, 하고. 

나는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성녀 시몬느 베이유가 <사랑과 죽음의 팡세>에서 간략하게 그 답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빵 한조각을 얻기 위해서는 하루 진종일 줄서서 기다릴 수 있어도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단 오분도 기다리기 어렵다." 

김구 선생이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평생을 줄서서 기다릴 수 있었던 큰 이유의 하나는 아마 선생의 말씀대로 그날 밤 그 일제 형사의 고투를 직접 목격하고 통렬하게 느낀 자괴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 4
 
페다고지(과거에 <지상의 저주받은 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출간된 바 있다)를 쓴 파울로 프레이리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피식민지인들에게 심어주려고 가장 애쓴 것은 그들의 자존감을 빼앗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흑인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준 것도 역시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다수의 흑인들이 Black is ugly라는 의식을 암암리에 갖게 되었고 하얀 피부를 갖고 싶다는 열망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한국지식인들 중에도 이렇게 민족적 자존감이 아주 낮은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이 춘원 이광수였다. 이광수는 지성적인데다 허우대가 멀쩡하고 말끔하게 생긴 얼굴 때문에 장안의 젊은 여성들에게 최고의 지적 아이돌로 부상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구를 찬양하는 서구주의자요 내심 우리민족의 아이덴티티를 경멸했던 대표적인 노이로제 환자였다.  

과거 나는 나 자신의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서 한국 정신의학계의 태두라 할 수 있는 이동식 선생에게서 개인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선생은 무슨 이야기 끝에 이광수의 그런 얼빠진 정신상태를 지적하면서 노이로제의 핵심을 의존증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이 때의 의존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는 차원의 것이다. 물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남들에게 기대거나 도움을 바라는 것뿐만 아니라 늘 남들과 자기를 비교하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젖는 것 등을 비롯하여 늘 남들의 시선을 좇아가며 살아가려는 것도 의존증이다. 아니 이런 정신적인 의존증이야말로 대표적인 의존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는 심각한 노이로제 환자였다. 그는 일제 말년에 조선민족이 열등한 상태를 탈피하고 일본인 같은 일등민족이 되려면 뼈속 깊이 일본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는 친일을 해서 큰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렇게 말한 게 아니라 동류인 불쌍한 조선 민족을 위해서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광수는 친일파가 아니라 열렬한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와 동시에 장기간 신경정신과 통원 치료를 받아야 할 심각한 신경 정신병 환자이기도 했다.
 


# 5

예전에 내가 일했던 직장의 직속상사는 알콜중독자이고 지독한 속물이었다. 그래서 당시 새파랗게 젊었던 나는 내심 늘 그를 경멸해마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속물도 책에서 줏어들은 근사한 얘기를  곧잘 내뱉곤 했다. 한번은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민족이 끝내 일본인이 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아나? 문화적 우월감이었어. 우리 문화가 일본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 그게 있어서 우리는 끝내 그들에게 복속당하지 않았던 거야. 문화라는 게 그토록 중요한 거야."

나는 그 출처가 어디건 간에 아무튼 그 속물의 말이 상당히 일리가 있다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다. 나는 근거가 있던 없던 간에 아무튼 우리의 그런 자부심이 끝내 왜인들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 6

가끔 무차별적인 친일파 청산 논리를 내세우면서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친일파 명단을 공개하고, 그들을 맹렬히 규탄하는 이들을 볼 때면 <슬랭덩크>에 나오는 미남 스몰포워드가 강백호를 볼 때마다 슬며시 "아호"라고 했던 경우가 떠오르곤 한다. <아호>라는 말은 <단순무식한 바보>라는 뜻이다. 

우리 대다수는 잘못한 이들을 맹렬히 비판하고 비난하기는 잘 해도 자기 입장을 버리고 공정한 입장에 서서 그들이 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하는 데는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그저 간단히 심판하고 비난하는 데는 에너지가 별로 들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에 말하기만 좋아하고 남들의 말을 경청하기 싫어하는 이들이 그토록 많은 것도 다 그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일제 말기에 우리 정치인, 애국지사, 지식인들의 대다수가 친일파 대열에 합류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서기 2000년도에도 이 시대 사람들이 다시 일본에게 30여년간 지배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리고 여러가지 정황도 그때와 비슷하다고 한다면  올바른 정신을 갖고서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아마 그때보다 더 많은 변절자들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시대의 잘못된 트렌드들을 따르지 않고 자기 소신을 갖고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이 영어 몰입교육을 주창하시고 옆집 엄마가 자기 딸을 영어 가르치는 유치원에 보낸다는 이유만으로 돈도 없으면서 자기 아들을 그 유치원에 보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사면 노력하지 않고도 반년만에 일억을 쉽게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거액의 융자를 받아서 신축 아파트를 덜컥 계약하고, 뉴타운 사업이 성공하기만 하면 나도 꿈에 그리던 중형아파트 한 채를 거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 모라는 대통령 후보나 오 모라는 시장 후보에게 내 귀중한 한 표를 서슴없이 던지고, 식물을 기르거나 가꾸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면서도 부모가 치과의사가 되면 평생 편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원예학과가 아니라 노상 냄새나는 남의 이빨이나 들여다봐야 하는 이들을 양성하는 치의예과에 들어가고....
  
지금의 우리가 과거에 일제의 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살았던 이들보다 더 의연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래도록 독립국가의 해방상태를 마음껏 향유하고 참된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인터넷을 비롯한 온갖 정보전달매체의 혜택을 잔뜩 받고 살아왔음에도 상당수가 자주 얼빠진 인간들처럼 행동하는 우리가? 당신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호>다. 강백호는 그래도 순수하기나 하지. 



# 7  

우리는 때늦게나마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과거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 시대 사람들이 과연 어떤 처지에 놓여 있었던가 하는 것을. 우리는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해서 그 얼마나 미친듯이 광분했던가를, 그래서 해외에서 활동하지 않고 국내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얼마나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었던가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 시절에 친일하지 않은 지식인들은 지주가 아니라면 평생 백수로 살 것을 각오해야 했다. 일제는 조선 민족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지식인들을 갖가지 방식으로 회유하려 하거나 협박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진 것 없고 지위없고 일자리 없고, 외부의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지식인들이 어떻게 의연당당하게 버틸 수 있었겠는가.

<국외의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말은 아주 중요하다. 몇년 지나지 않아 일제가 패망하리라는 걸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이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해도 쉽게 변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춘원 이광수와 시인 서정주를 비롯한 많은 당대 지식인들은 세계사의 흐름에 관한 정보가 거의 차단된 닫힌 세계에서 살고 있었기에 일본제국주의가 영원히 계속될 줄로만 믿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은 다양한 친일 변절의 행로를 밟게 된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옳은 건 아니나 그건 지금의 입장에서의 판단이고 당대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 8
나는 친일파 행적을 연구하는 이들이 가장 중시해야 할 부분은 누구누구가 친일파고, 어떤 이들이 심하게 친일을 했고 어떤 이들이 약하게 했나, 하는 것 따위 보다는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친일을 했으며,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복속시키기 위해 어떤 간계들을 썼고 얼마나 지독하게 애썼는가, 하는 부분이라 믿는다. 

나는 이 글의 맨 앞에서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한 기간이 4년인데 반해서 우리는 그 아홉배나 더 긴 세월인 35년간 일제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4년간의 잘못된 행적은 적발하기도 쉽고 청산하기도 쉽다. 다수는 독일인들에게 굴종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민족이 30년 이상 일제의 지배를 받고, 다수가 일본제국주의는 영원하리라 믿고 있고, 또 사회지도층의 대다수가 어떤 식으로든 일제와 유착하고 협력하는 상황에서 어떤 한 개인이 혼자서만 의연당당하고 독야청청하게 살기가 쉬우리라 보는가. 

그리고 과거 국내에서 제대로 활동할 능력을 지닌 이들의 대다수가 어떤 식으로든 친일을 했던 상황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해서 친일한 이와 친일하지 않은 이들을 가려내는 작업이 금방 순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가?

친일파 청산 작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었던 이들이 국외에서 활동한 애국지사들과 공산주의자들 뿐이었다면, 그리고 해방정국에서 힘을 쓸 수 있는 국내 인사들의 거의 전부가 친일파들이었다고 한다면 그 싸움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이라 보는가? 



# 9

거듭 이야기하지만, 과거 친일행적의 자취를 남긴 국내 인사들이 처한 상황이 제아무리 가혹했어도 친일파 청산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가끔, 친일파 청산 논란이 벌어질 때 보면 너무 단순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단순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인촌 김성수 같은 이를 우리는 친일파라고 쉽게 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거듭 말했다시피 당시 국내에서 어떻게라도 올바른 정신을 갖고서 민족의 미래를 개척하려 애쓴 이였다면 일제에게 노골적으로 거역하면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성수는 보성전문을 세우고, 동아일보를 세우고, 경성방직을 세우면서 조선의 교육과 언론과 기업의 초석을 쌓으려고 애썼고, 그런 큰 목적을 위해서 표면적으로는 친일인사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능한 한도 내에서의 개량적인 변화를 도모했던 인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대충 이 정도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권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국내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거나, 국내에서 가능한 일이라도 찾아서 하는 것 중의 어느 하나였다. 그리고 일제의 간악하고 가혹한 탄압 속에서 이런 정도라도 국내에서 애쓴 이들조차 별로 없었던 게 당시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김성수를 친일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가 표면상의 친일을 했다고 해서 그에게 대표적인 친일파라는 표찰을 붙인다면 나는 그저 <아호>라고 할 수밖에 없다. 
   


# 10 

최근 쓰나미가 일본 동북부 해안지방을 휩쓸고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일본 정부에서는 그 경황없는 상황에서 돌연 독도 문제를 들고 나왔다. 

나는 일본정부가 그렇게 한 것은 과거 박모나 요즘의 이모라는 대통령들처럼 상황이 자기네한테 불리하게 돌아갈 때 국민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술수라 여긴다. 일본인들은 이미 1926년의 관동 대지진 때도 국민의 갈길 없는 분노에 출구를 마련해주기 위해 조선인들이 혼란통을 이용해서 우물에 독약을 탔다는 식의 헛소문을 터트려 분노한 일본인들이 수천명의 조선인들을 미친듯이 사냥해서 떼로 살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 일본의 활로가 꽉 막힐 때는 과거의 정한론 같은 한국 정벌론이 다시 대두할 가능성이 있으며, 그때 한국을 칠 핑계로 대두되는 것이 바로 독도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리적인 힘으로 이민족을 복종시키고 지배하는 전략은 이미 시효가 지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고? 이제는 금융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게 지배하는 것이 시대의 트렌드가 되었다고? 

그건 맞는 얘기지만 그렇기 하기 위한 전초전으로 독도라는 이슈를 두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싸한 명분을 들이대고 전쟁에서 이긴 뒤 그들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남겨두면서도 경제적인 예속을 도모하려면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나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일본인들이 늘 두렵다. 인간은 가끔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기에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과거를 통해서 오늘을 사는 데 필요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일본인들이 이 개명한 시대에도 자기네의 국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어 그 활로를 한국 쪽에서 찾기 위해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 한국을 침탈하려 들 때가 앞으로 다시 올지도 모른다. 나는 내 이런 두려움이 기우나 망상만은 아니라 여긴다.




하얀연인들 11-05-09 16:54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무주공산 11-05-09 21:30
 
하얀 연인들님/ ㅎㅎㅎ 욕 많이 얻어먹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면서 썼는데도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네요.^^
동쪽달마 11-05-12 09:27
 
동일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야에 대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떠한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볼 때 여러가지 다른 위치에서 볼 수있어야 제대로 보는 것이겠지요. 욕먹을 글은 없습니다.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글이라면 나름대로의 논지나 그 위치에서의 시야를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소생과 생각은 당연히 다르지만, 그러한 여러 정보와 주장들을 섭렵하면서 각자 자신의 생각과 주장들이 생겨나는 것이니까요.
과거사 특히 일본식민지 시절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잘못 접근하면 수치나 치부로 보여질 수 있는 민감한 부분이나 역사의 한 조각을 살아가는 현 시대의 사람들이 꼭 되새겨 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왕소심 11-05-15 13:56
 
친일파를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는 계기네요.
제 기준으로 다시 구분해 보자면 그나마 괜찮은 친일파, 꼴통 친일파를 구분해서
벌 받아야할 친일파를 제대로 축출하는거 나름 찬성입니다.
친일파 벌 주기에는 공소시효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친일뉴라이트들이 개판치고 있는 요새 더욱 시급한 조치구요.

마지막 10번 정신이 번쩍 듭니다.
경제적으로 한국 시장을 잠식은 이미했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정말 걱정입니다.
친일파가 나라를 휘젓고 있는 이 상황에선 더욱더.
무주공산 11-05-17 02:00
 
왕소심님/ 님이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정말로 사리사욕만을 위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된 이들은 반민특위가 구성되었을 때 철저히 단죄하고 처단했어야 합니다. 특히 나라를 팔아먹었거나 일제 경찰이 되어 동족을 학살하거나 고문한 이들은. 하지만 이미 이승만 정권 때 친일파 처단은 물건너 가버렸지요. 이제는 역사적 청산과 그 후손 재산의 청산문제가 남았는데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잘 하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시효가 많이 지나가버려 진정한 친일파 청산작업은 역사학자들이 할 몫으로 남아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호 11-05-18 22:54
 
반갑게 잘 보았습니다. 친일파에 대한 얘기가 나올때마다 들었던 생각을, 무주공산님께서 꼭 집어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송두율교수의 내재적접근을 소재로 쓴 글이 있습니다. 적당한 곳에 올려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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