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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침
조회 1,183  |  추천 11  |  비추천 0  |  점수 60  |  2011-04-06 13:58
글쓴이 :   무주공산

혁명의 길:The way of Buddha 6
-나 하나의 변화는 곧 세상 모든것의 변화를 의미한다.



오래 전에 제목에 끌려서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는 영화를 봤다. 제목처럼 잔잔한 영화였다는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영화관에서 상영될 무렵, 어떤 이가 짜증스럽게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는 게 말이 돼?" 하면서 제목이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나는 "왜? 제목이 어때서? 난 참 좋은데," 했다. 그와 나는 각기 다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의 짜증스러운 반응이 그저 좀 의외였고, 그런 생각이 좀 고루하게만 느껴졌다. 시처럼 좋은 제목이구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상황이 좀 더 논리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세상에는 객관적인 아침이 하나만 있고 모든 이가 같은 아침을 맞는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각기 다른 아침을 맞는다는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게는 <세상의 모든 아침>이 아주 논리적인 제목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그 제목은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기를 기원하는 기도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아침을 관류하는 은은한 어떤 마음의 흐름이라는 이미지도 떠오르고. 

그렇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이 우주에 객관적이라는 것, 스탠다드, 표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는 칠십억의 우주가 있고, 칠십억의 아침이 있다. 우리 모두는 매 순간 각자의 우주를 창조하면서 살고 있다. 붓다의 말대로 그저 " 한 생각이 일어나면 온갖 것이 생겨나고, 한 생각이 사라지면 온갖 것이 사라진다." 이런 진실을 축약한 말이 이른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마음이 모든 것을 빚어낸다는 붓다의 말은 많은 이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곤 한다. 내 도반인 어떤 여성도 시장에 갈 때마다 눈 앞에 보이는 온갖 것을 의심했다. 과일상점에 잔뜩 쌓인 사과를 정신없이 바라보면서 "저게 내가 지은 것이라고? 암만 봐도 내가 지은 것 같지 않은데? 저 사과는 그냥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데?" 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그 여성은 붓다의 그 말이 그 사과를 마치 각자가 공작실에서 공작품을 만들어내듯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로 해석했고, 그런 해석이 현실과 매치가 잘 되지 않아 힘겨워했다. 그렇다고 붓다가 거짓말할 분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런 식의 혼란은 그 말이 우리 인식의 근본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빚어지는 애교있고 귀여운 혼란이다. 당연히 세상에는 단단하고, 동그랗고, 발그레하고, 씹으면 달콤새콤한 맛과 파삭파삭한 감촉이 나고, 비타민 C와 다양한 미네럴을 함유한, 말로 뭐라 표현할 방쁩이 없는 과일이 존재한다. 그 이름을 간단히 일러서 우리는 사과라고 한다.  

하지만 내게 사물을 인지할 능력이 없다면 내게 사과란 과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사과를 봐도 사과가 보이지 않는다. 죽은 사람은 멍하니 눈뜨고 보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리고 멀쩡히 살아 있어 사물을 인지할 능력이 있다 해도 나는 사과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사과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딴 어떤 생각이나 기억이나 감정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보고도 못본다. 우리는 하루 중에 무수한 사물을 보지만 막상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사물들의 실제 숫자는 얼마 되지 않는다. 

영미 사람들은 사과를 apple이라고 부른다. 한데 우리의 사과와 apple은 같지 않다. 우리의 업 총체, 우리의 문화 총체에서 사과가 갖는 의미와 영미인들의 업총체, 문화 총체에서 애플이 갖는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같은 문화총체 속에 포함되어 있다 해도 각자의 업(습관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게 사과는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된다. 일체유심조는 그런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일체를 내 마음이 지어내고, 창조해낸다는 말이 성립하는 것이다. 

김춘수가 이제는 국민시가 되다시피한 <꽃>에서 이야기했듯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사과가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내가 그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같이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 그것들은 내게로 와서 그 무엇무엇이 된다.   

우리가 일상 삶을 사는 동안 매 순간 뭔가를 볼 때마다 인연 따라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난다. 물론 어떤 건 봐도 아무 생각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지만 또 어떤 건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자꾸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수의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불수의적인 것에 가깝다. 그저 인연따라 일어나는 것들이니까. 성에 유난히 탐닉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성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또 평소에도 본인 스스로가 자꾸 그런 경향을 부추기곤 하니 수의적(의도적)인 요소도 작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결국은 업식의 작용일 뿐이다.
 
심리학적 검사방법에 로르샤하 검사법이 있다. 어떤 이미지를 보고 내면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심리상태를 파악하는 방법. 같은 이미지를 보고도 어떤 이는 전봇대 같다고 할 수 있고, 또 어떤 이는 남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검사법도 역시 이 세상에 객관적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입증해주는 한 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세상은 우리 각자가 매순간 창조해내며, 따라서 우리 각자는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종교들에서는 마치 유일신만이 창조주요, 우리 각자는 그의 피조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붓다가 제시한 진리의 관점에서는 우리 각자가 창조주요 신은 우리의 피조물이 된다. ("신은 우리 인간의 창조물"이라고 한 니체 혹은 포이에르바하는 남의 말을 표절한 것이다.) 신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아니고 우리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창조해낸 존재라는 의미에서 그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다. 그런 종교를 믿는 이들이 내 이런 이야기를 불경스럽다고 화를 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구는 여전히 돌아가니까.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내게는 <구멍뚫린 단추>를 극도로 혐오하는 업식이 있다. 구멍이 뚫리지 않은 단추는 괜찮은데 구멍뚫린 단추를 보면 쳐다보기도 싫은 감정이 올라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줄곧 그래서 나는 세상 살기가 좀 힘들었다. 당시 한국의 모든 중고교생들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하복에는 거의 예외없이 구멍뚫린 단추가 달려 있었으니까. 이 단추는 내게 하나의 화두와도 같아서 나는 평생토록 줄곧 그것을 붙들고 있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것에 붙잡혀 있다. 사실, 내 이런 업은 내 개인적인 강렬한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 게 분명한데 과거에 나는 그 수수께끼를 좀처럼 풀어낼 수 없었다. 

십년 전 무렵, 나는 직관적인 통찰의 힘을 통해 그 화두를 풀어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원인을 알고 있다. 한데 원인을 밝혀냈고 화두를 타파했다고 해서 구멍뚫린 단추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혐오하는 강도가 약해졌을 뿐이다. 이 세상 심리학 혹은 신경정신의학의 한계가 대략 그 정도다. 정신의학자인 스캇 펙은 <In Search of Stones>라는 책에서, "정신의학계에서는 신경정신적 증상들을 백퍼센트 완치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정설로 통용되고 있다," 고 이야기했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은 그 병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없다. 그저 노력하는 데 따라서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스캇 펙은, "우울증이 일어나는 빈도가 90퍼센트에서 10퍼센트로 줄어들었다면 그 변화는 엄청난 변화라 할 수 있으니 그 치료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고 했다.    

얘기가 좀 변두리로 샜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구멍뚫린 단추를 싫어한다는 것이 객관적인 현상일까? 모든 사람이 다 구멍뚫린 단추를 싫어할까? 어렸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이들도 다 단추를 싫어할 것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고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 세상에 단추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단추에 대한 내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다 내 마음의 소산일 뿐이다.  

세상이라는 것도 그렇다. 어떤 이는 세상을 사악하고 더러운 기운이 충만한 곳으로 본다. 또 어떤 이는 은혜로 충만한 곳으로 본다. 또 어떤 이는 온갖 풍파가 늘 들이닥치지만 그런대로 살만한 곳이라 여긴다. 또 어떤 이는 그런 풍파 덕에 자신이 날로 성숙하고 있기에 세상은 참다운 나 자신을 찾아낼 수 있는 좋은 사업장이라고 본다. 

이렇게 우리는 제 마음대로 세상을 지어내고 있는데, 사실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가급적 좋게 짓는 편이 좋다. 좋게 짓든 나쁘게 짓든, 뭐든 과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그래도 좋게 짓는 편이 각자에게 유익한 결과를 가져다 준다. 흔히 남을 미워하지 말라, 미워하면 너만 다친다, 라는 말을 한다. 남을 미워하면 제 내면부터가 황폐해지거니와 몸도 황폐해지기 쉽다. 호르몬의 관점에서만 살펴봐도 그렇다. 우리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과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마인드를 가질 때 분비되는 호르몬들이 다르다. 아드레날린이 나올 때와 세로토닌이 나올 때의 몸과 정신 상태는 현격하게 달라진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주조를 이룰 때와 부정적인 마인드가 주조를 이룰 때는 수명조차도 달라진다. 평소 병이 잦거나 없는 것도 역시 그런 것에 좌우되고.
 
모든 것이 다 내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한층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장에서 떠오르는 온갖 영상들과 자기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다. 요컨대 헛것인 영상들을 쫓아가지 말고 그 영상의 바탕이 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다. 그렇게 영상들과 그 바탕이 되는 마음이 분리될 때 우리는 늘 뭐에도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자각의 빛 속에서 홀로 우뚝 설 수 있다. 붓다는 이런 상태를 일러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했고 백장선사는 "홀로 대웅봉에 우뚝 서 있다" 고 했다. 그럴 때 우리는 울어도 그저 인연 따라 울고 웃어도 그저 인연따라 웃을 수 있다. 이렇게 되려고 노력하는 것을 일러 흔히 명상, 혹은 수행이라고 한다. 

"깨닫기 전에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낮동안 직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다. 그러나 우리는 깨달은 뒤에도 아침에 일어나 낮동안 직장에 가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어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고 잠을 잔다." 

깨닫기 전후에 외적으로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그저 내적으로만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내적인 변화 혹은 변혁은 대단히 큰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나 하나의 내적인 변화로 세상의 모든 아침에는 평화의 기운이 깃든다. 

나는 온 우주 그 자체이기에 나 하나의 변화는 곧 세상의 변화를 뜻한다.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의 파장이 크면 클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데이비드 호킨스는 <나의 눈>에서 "예수나 붓다 같은 큰 성인은 온 세상 사람들의 부정적인 에너지를 다 상쇄시킬 수 있다," 고 했다.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4월 6일




미송 11-04-06 23:26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고맙습니다
행복안 11-04-13 12:15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현상은 존재할려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모든 동식물들이 각기 필요에 의한 것을 나타남이니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소중하기도, 또는 그렇치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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