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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실용주의가 판치는 사회
조회 990  |  추천 9  |  비추천 0  |  점수 40  |  2011-04-05 18:10
글쓴이 :   무주공산

싸구려 실용주의가 판치는 사회
-진정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은 게으름에서 나오는 법이다.



학창시절, 철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전형적인 미국적 철학이라는 실용주의를 보면 좀 싸보였다. 존재를 탐구하거나 인간의 인식구조를 해부하려 했던 서 유럽 철학사조들에 비해보면 좀 그러했다. 그것은 꼭 기초과학과 실용과학의 대비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실용주의라는 것도 역시 대단히 합리적인 사유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 꼭 천박한 것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한데 지금의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실용주의는 대단히 싸보이고 비합리적이고 비실용적으로 보인다. 

<한국은 후진국이다>라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인문학의 꽃인 문학, 역사, 철학이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데 이런 풍조야말로 전형적인 싸구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선 과거보다 일류대학 입학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해지고, 대학졸업자들이 양산되는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화이트칼라 일자리, 혹은 전문직 일자리 경쟁이 더 치열해진 데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기업들이 인문계 출신 학생들보다 법학, 경영학, 공학 같은 실용학문을 전공한 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은 과거 우리 세대가 대학을 졸업할 때도 이미 존재해서 채용공고에서 이미 과 제한을 뒀다. 인문학 중에서 영문학만이 예외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풍조는 이 시대에 와서 더욱 더 심화되어 이제 지방대학들이나 서울에서도 이른바 별 볼일 없는 대학들이 설치한 과들을 보면 이게 기술전문대학인지 4년제 대학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당장 써먹을 기술 중심의 학과들 일변도로 이루어져 있다. 

전문대학으로 가면 이런 현실은 희안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더욱 심화되어간다. 골프경영, 장례지도, 사이버 도둑잡는 기술을 연마한다는 정보보호학과, 당구학과, 김치학과, 바둑학과 등에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런 걸 배우는 데 꼭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대학에 다녀야할까?   
   
이런 풍조는 라이선스, 스펙을 중시하는 경향에서 비롯되었을 텐데, 이러다가는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일을 다루는 온갖 학과들이 다 생겨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막걸리학과, 빈대떡학과, 캐디학과, 변기관리학과, 싱크대활용학과, 냉장고관리학과, 장보기경영학과, 짝퉁가리기 학과, 고스톱학과, 가방들어주기 학과 등이.

나는 옛날부터 늘 기업경영자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이나 통계학, 법학, 행정학, 공학 등과 같은 실용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이 꼭 기업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이 된다는 근거는 어디 있는가, 하고. 오히려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밝은 이들이 소비자의 생각과 심리와 취향에 민감해서 제품 생산과 마케팅에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실용학문을 전공한 이들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들이 해당기업에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오히려 인간의 다양한 측면을 공부한 인문학도들이 사고의 다양성과 신축성과 융통성을 갖고 있어서 기업경영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안학교에서는 흔히 학과보다 인성을 더 중시하고, 그 때문에 일반학교에서는 사갈시하는 예술, 체육, 자연학습 같은 것에 더 비중을 두는 바람에 국영수 같은 학과목 공부는 자연히 소홀하게 취급되기가 쉽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목표가 확실하고 주체적이고 자발적인 성향이 강해진 아이들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알아서 무섭게 공부하고, 그 덕에 일반학교에 다닐 때는 몇년을 두고 공부해야 할 내용을 반년 동안에 단번에 해치우곤 한다. 예전에는 부모와 교사가 아무리 공부하라고 다그쳐도 안 하던 아이들이 자진해서 그렇게 한다. 그 효율성은 놀라울 정도다.    

나는 이른바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기업에 들어가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경영학이나 법학을 공부한 이들이 몇 년 걸려 방만하게 배운 내용을 단기간에 숙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컨대 마케팅 담당 직원이라면 마케팅의 핵심이론을 아는 데 몇년씩이나 걸릴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담당업무와 긴밀하게 관련된 지식과 정보를 단기간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습득해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인성이나 의지나 창조적인 재능이 아닐까?   

로마인 이야기를 보면 카이사르(시저)는 전쟁터에 나섰다 하면 거의 백전백승했고, 한번 패한 적에게는 다시 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카이사르가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마 젊었을 때 당대의 다른 모든 귀족 젊은이들처럼 그리스 로마 시인들의 시를 공부하고 플라톤을 공부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공부했을 것이다. 운동도 열심히 했을 것이고. 아마 그는 당대에 군사학 전문학교 같은 싸구려 학교가 있었다(현대의 이런 학교를 싸구려로 매도하는 것은 아니니 삼군사관학교 생도들은 오해마시기 바랍니다) 해도 그런 데를 다닐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전투의 귀신이 되었는데, 그것은 주로 그가 상대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사전에 많은 정보를 수집했기에 가능했다.    

우리 시대에 인문학(Liberal Arts)이라는 걸 전공한 이들은 실용학문을 배운 이들과는 달리 자유주의적이고 창의적인 성향이 더 강해서 그저 기업의 나사못이나 톱니바퀴 정도가 될 사람들을 원하는 기업가의 구미에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하는데 툭하면 거기서 이탈하려 들고 이의를 제기하고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져서. 

어떤 기업가가 정말로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 기업은 그 폐쇄성과 경직성, 획일성 때문에 글로벌 기업환경에서 백전백패하고 말 것이다. 범용한 능력과 아이디어와 실천력을 가진 사원들을 갖고서 어떻게 그 어려운 국제경쟁체제를 헤쳐나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우리의 이런 싸구려 실용주의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분야가 이른바 국가의 백년지대계에 해당하는 교육분야로 보인다. 바람직한 인성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게 아니고 인재는 하루 아침에 양성되는 게 아닌데 우리사회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급하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서 그렇다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급할수록 천천히 돌아가야 한다는 걸 왜 이론으로만 알고 실천은 하지 못하는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한국 아이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려 드는 희안한 발상은 어디서 무슨 근거로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런 부모의 뇌를 해부해서 그 구조를 들여다보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들여다봤자 저 오십년대 라디오처럼 단순한 트랜지스터 구조로 되어 있지 않을까 싶어 별로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일이년 동안에 가장 뛰어난 언어학습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으로 충분히 입증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나이 때 부모들이 평생 한이 맺힌 영어를 가르치려 드는 것이 온당한 일일까? 아이들이 부모의 한풀이 도구인가? 

게다가 이번 정권담당자들은 이런 싸구려 실용주의의 신봉자들이어서 집권하자마자 교육개혁을 한답시고 영어몰입식 교육이다 뭐다 해서 그렇지 않아도 성급한 부모들의 성미를 더 급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경쟁풍토를 강화하는 시스템을 강조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과열 경쟁으로 망가져가는 학생들을 더욱더 사지로 몰아넣는다. 오바마는 한국의 실정도 잘 모르고 한국의 교육을 찬양한다만은 한국의 교육은 과다한 경쟁풍토로 이미 실신상태에 빠져 있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가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과거 연세대 교수였던 성내운 선생은 한국의 교육이 가장 잘 되었을 때는 6.25 때였다고 했다. 정부가 전쟁을 치르기에 바빠서 교육 같은 건 돌아볼 여지도 없었을 때 교육이 가장 잘 되었다고. 국가체제가 존망의 기로에 섰을 때 열성적인 교사들과 열성적인 학생들이 천막교실에서 가마니를 깔고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그건 정권이 교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 교육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얘기에 다름아니다. 

전시의 교육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이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5.16은 우리 교육이 정권의 도구 중의 하나가 된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간 우리 교육은 만두같은 음식이나 아이들처럼 정권이 과다한 관심을 갖고 자꾸 주무르면 주무를수록 자꾸 더 터지고 곪아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시험문제가 창의력과 사고력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듯해서 아, 이제 좀 뭐가 되려나 보다 했더니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그 고질적인 싸구려 실용주의적 사고가 그간의 긍정적인 발전양상을 뒤집어 놓기 시작했다.  

전 정권이 한 것이라면 뭐든 다 뒤집어엎는 것을 능사로 삼는 이명박 각하의 고질병은 교육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애들이 제대로 경쟁을 안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그런 희안한 단세포적인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목표의식과 주체성과 자발성, 그리고 사고의 깊이와 다양성과 신축성은 아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부여해주고 좀 한가롭게 지내게 할 때 제대로 우러나오는 법이다. 책도 좀 보고, 운동도 좀 하고, 음악도 좀 듣고, 야외에 좀 놀러가기도 하고, 취미나 교양 서클 활동도 좀 하고, 등산도 좀 하고, 친구들과 좀 만나기도 해야 사회와 인간을 폭넓게 보는 시각이 키워지고 재능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제발, 아이들을 때이르게 과열 경쟁하는 싸움터로 내몰지 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신물나게 경쟁을 해야 할 거구만. 실현되기 어려운 이상론이긴 하지만, 아무튼 학교는 아이들이 살벌한 사회에 나가기 전에 잠시 거치는 낙원 같은 곳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나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가끔 게으르게 뒹굴뒹굴할 시간도 주고 잠도 좀 마음대로 자게 했으면 좋겠다. 진정한 아이디어와 창의성과 재능은 게으름에서 피어나는 법이다.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4월 5일




행복안 11-04-13 12:46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에 살면서 우리 부모들 사고가 획일화되고...최소한 배고프게 살게하고 싶지않은 맘이 많아서 그런것이 아닌가 생각듭니다...과유불급이라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인문학이 대접받는 시대가 또 오지 않겠습니까?...먹고사는 문제가 심각한 요즘에 싸구려 실용주의라는 격한 표현도 그렇치만 ..님 말씀처럼 훌륭한 인문학의 바탕없이 실용주의는 사상누각입니다. ...실용주의에 치우칠수록 사람살기 더 어려운 현실이 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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