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후진국이다
-흙도 밟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땅이란 단어부터 가르치는 나라
오늘자 한국일보에 <유치원에서 문자 가르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기사가 떴다. 아주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내용인즉슨,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의 어린이들의 발달단계에서는 문자를 가르치는 게 독이 되어 OECD 국가들에서는 하나같이 유치원에서 읽고 쓰기를 가르치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 한국의 유치원들에서만 유독 그런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과학부에서도 고시를 통해 유치원에서는 읽고 쓰기를 가르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독일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초등학교 취학 전 문자 및 수 교육이 금지돼 있고 일부 국가는 위반 시 형사 처벌까지 한다"면서 "특히 영재교육법으로 널리 알려진 이스라엘에서도 유치원 과정까지는 문자나 수를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고 설명한 김일권 한국 특수교육연구소장의 발언을 인용했다. 그리고 홍은숙 나사렛 유아특수교육과 교수의 마지막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흙도 밟아보지 않은 아이에게 땅이란 단어부터 가르치는 건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이런 이들의 지적은 백번 옳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은 주위의 자연을 잘 관찰하고 생생하게 교감하는 것을 통해서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지능이 서서히 형성되어가는 나이일텐데, 때 이르게 추상적인 문자와 숫자를 가르쳐서 뭘 하겠다는 것인지. 게다가 때 이르게 영어까지 가르치려고 광분하는 학부모와 교사들이 상당수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미쳐도 단단히 미쳐 돌아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꽤 오래 전 이야기 한 토막. 강원도 강릉에서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의 아내도 중학교 교사다. 그런데 그의 맏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이 엄마더러 학교에 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 엄마가 학교에 갔더니 담임인 여교사가 부모 양쪽이 다 교사인데 어떻게 애를 한글도 가르치지 않고 학교에 보냈느냐고 짜증을 내더란다.
그 남편은, "나도 한글을 남보다 늦게 배웠지만 지금은 시를 쓰잖아. 저 놈은 내가 잘 아는데 날 많이 닮았어. 좀 멍청해," 했다. 아내는, "뭐, 때 되면 지가 알아서 배우겠지요," 하면서 웃었다. 훗날 그 아들은 영동지방의 명문이라는 강릉고에서 전교 수석을 하고 세칭 일류대학에 입학했다.
이 일화는 물론 일반론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글을 늦게 깨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난리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주위에서 직접 목격한 실제의 경우 하나를 예로 든 것뿐이다.
또 하나의 예. 내가 <컴패션과 사이코패스>라는 글에서 언급한 중학교 2학년 아이는 부모가 교육열이 높아서 아이가 어렸을 때 온갖 종류의 사교육 과정을 다 거쳤다. 그 아이는 농악도 좀 배웠고, 피아노도 좀 배웠고, 그림도 좀 배웠고, 당연히 영어는 한참 배웠고, 그밖의 온갖 것을 학원에서 다 배웠다. 그 아이는 요즘 아이들이 다닌다는 사설 학원은 거의 다 거쳤다. 문제는 그 어느 것도 그 아이가 제 스스로 원해서 배운 게 아니고 부모가 억지로 시켰다는 점이고, 또 그 아이가 영어를 제외한 그 어느 것 하나도 이삼개월 이상 배운 적이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그 아이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내가 근무하던 대안학교에 왔다. 그 아이는 메이플 스토리의 달인이었지만 그외의 모든 것에는 거의 아무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인문학이 천대를 받고 있다. 문학, 철학, 역사학, 심리학, 사회학 등이야말로 미래사회를 책임지고 나갈 사람들이 기초적인 소양으로서 꼭 갖춰야 할 지식들임에도 당장 돈이 안되는 학문들이고, 또 이런 분야의 학문들을 공부해봤자 취직도 안 되니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학문들이 되어가고 있다. 기초과학분야들은 안 그런가. 모든 과학의 기초가 되는 물리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천문학, 수학 같은 분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기피 대상이 되어온 학문들이다.
내 또 한 친구는 과거에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하늘>이라는 월간지를 만들기까지 했는데, 가끔 만날 때마다 그는 잡지운영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천문학 수준은 저 아프리카 오지의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개탄하곤 했다. 어디 천문학 뿐이겠는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은 다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러기에 일본에는 입자가속기가 수백대나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에 한 대를 겨우 만든 정도에 불과하지.
최근 애플의 놀라운 선전이 자주 매스컴에 보도되고 애플을 그렇게 비약하게 만든 주역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도 자주 보도되곤 한다. 그의 이야기 중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그가 자신을 만든 주요 요소의 하나로 요즘 한국에서 지독하게 천대받는 인문학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이 오늘의 자신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그래도 스티브 잡스처럼 회사를 크게 번성하게 한 사람의 말 정도나 되니까 매스컴이 귀를 기울이지 한국의 이름없는 경영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 그 말이 아무리 옳아도 우리의 매스컴이 아는 척이나 하겠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하버드를 미국 일류대학의 상징으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 하버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이다. 그리고 미국의 명문대학 학부과정에서는 인문학을 중시한다. 요컨대 훗날 대학원 과정에서 법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할 이들도 학부 과정에서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형사소송이나 민사소송을 다루는 법조인들이 문학과 역사와 철학과 심리학과 사회학적 소양도 없이 법조문만 따져가며 다른 이들의 인생을 좌우할 중차대한 판결에 관여하려 든다면 그게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외국인들과의 비즈니스 거래가 잦은 어떤 지인은 외국인들과 접할 때 가끔 자신이 교양이 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열등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돈과 관계된 거래라는 것이 한없이 삭막해지기 쉬운 것인데 기껏 만나서 돈 이야기만 한다면 그거 얼마나 재미딱지가 없는 일이 되겠는가. 그래, 외국의 정치인들이나 외교관, 경영자들은 거래 당사자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흔히 딱딱한 비즈니스를 다루기 전에 영화나 연극, 문학, 스포츠 등의 화제 등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른바 우리나라의 외교관들이나 경영자들 중에서 자기 전공 분야 이외의 분야들에 관심을 갖거나 깊은 지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애플과 삼성, 스티브 잡스와 이건희는 참으로 대조적인 이미지들을 떠올려준다. 서정주는 어느 시에서 "자기를 키워준 것의 8할은 바람이었다", 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건희가 스티브 잡스처럼 자기를 키워준 것의 오할은 인문학이었다, 라는 말을 한다는 것을 꿈에라도 상상할 수 있을까? 혹시 그가 애덤 스미스나 케인즈, 록펠러 정도는 알지 몰라도 다산 정약용과 서정주와 플라톤을 잘 알것 같지는 않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 뭐 꼭 모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좀처럼 그럴 거라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느낌에 그는 그저 박정희와 이명박처럼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족장 정도를 연상시켜준다. 그리고 그의 회사도 그런 식의 전근대적이고 폐쇄적인 위계질서가 지배하는 관료들의 집단처럼만 여겨진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다시 돌아왔을 때 접한 직원들도 창의성에 넘치고 활기차고 적극적인 직원들이 아니라 안정만을 추구하는 관료집단처럼 보였다고 했다. 우리는 이건희가 그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만을 생각하는 범주를 넘어서서 소비자가 바라보는 갤럭시폰에 관해서, 소비자 입장에서의 편리성에 관해서 깊이있게 생각해보고 갤럭시폰을 그런 식으로 진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가질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GDP, 수출액, 생활수준, 한류 유행 등을 들어가며 한국이 중진국 대열을 넘어서서 선진국을 지향한다고 착각할지 모르나 우리 사회의 상당부분은 중진국은 고사하고 후진국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우리사회의 교육을 망치는 이들은 정치가들이나 교육자들이 아니라 바로 무지하고 맹목적인 학부모 자신들이고, 이런 이들에 의해서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후진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유치원 교육, 초등교육, 중등교육, 대학교육의 파행적인 양상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고스란히 비춰주고 있다.
ⓒ무주공산&사회적네트워크&2011년 4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