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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아도 비 맞은 자가 없다
조회 1,312  |  추천 7  |  비추천 0  |  점수 50  |  2011-03-26 13:36
글쓴이 :   무주공산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혁명의 길
The way of Buddha 2부

옛 선사들은 흔히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곤 했다. 비를 맞아도 비 맞은 자가 없다니? 걷는 자는 없고 걸음만 있을 뿐이라니? 죽어도 죽은 자는 없다니? 이 무슨 궤변들인가? 소피스트들도 아니고. 말장난하나? 

한데 사실, 그들이 말하는 존재의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의 궤변같은 이야기가 진실의 핵심을 찌른 내용이고, 정연하고 합리적인 논리에 의거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하는 우리가 헛것에 놀아나는 이들이 된다. 좀 심한 비유를 든다면 이른바 합리적인 사람들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는 어두운 광에 놓인 새끼줄을 뱀이라고 하여 난리치는 이들이고 그들은 새끼줄을 보고 새끼줄이라고 말한 침착하고 차분한 이들이다.

붓다가 새벽별을 보고 대오각성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붓다가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신비나 기적 같은 것과 맞닥뜨린 것 같다는 인상을 갖기 쉽다. 세상에는 그것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지만 나는 붓다의 그 대오각성이 인연법의 본질을 통찰해낸 것 같은 사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긴다. 물론 붓다가 깨달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미국의 선지식인 데이빗 호킨스는, 기독교는 니케아 종교회의 이후 예수의 원 가르침이 많이 왜곡되었지만 불교의 경우는 그 원형의 상당부분이 잘 보존되어 있는 종교라 했다. 나도 그의 말이 맞다고 여긴다. 사실 붓다의 원 가르침을 담은 경전들 중에서 산스크리스트 어 경전들은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붓다의 가르침은 대체로 팔리어로 표기된 초기 경전들을 통해, 엄청난 양의 티벳장경을 통해, 그리고 한문으로 표기된 경전들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해인사에 보존된 팔만 대장경도 한문으로 표기된 아주 중요한 경전들이니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한데 우리의 경우 불교가 중국을 통해 전래되는 바람에 붓다의 가르침이 까닭없이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기 쉬운 것이 되었다. 다 알다시피 인도 사람들이 쓰던 문자들은 표음문자들이고 중국의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다. 표음문자가 표의문자로 옮겨질 때는 왜곡이 일어나기 쉽다. 요컨대 아주 쉬운 내용도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내포한 어려운 것으로 변질되기 쉽다. 현재 표음문자인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문이라는 표의문자로 표기된 내용을 다시 표음문자로 해석해서 읽어야 하니 삼중의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문을 잘 모르는 요즘 세대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팔리어로 표기된 붓다의 초기 가르침들을 우리 말로 그대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 여겨진다. 한 표음문자로 표기된 내용을 또다른 표음문자로 옮길 때는 왜곡이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더 줄어들 테니까. 중국어 텍스트를 한글 텍스트로 옮기는 일보다는 일본어 텍스트를 한글 텍스트로 옮기기가 훨씬 더 쉬운 것과 같은 이치다.

인연법에서의 인연(因緣)이라는 말도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시대 사람들에게는 그 의미가 잘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조건(condition)이라는 말이 더 쉽게 들어올 것이다. 그러므로 인연화합이라는 말 대신에 조건들의 화합이라는 말이 더 친숙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연생緣生은 무생無生"이라는 한문투의 표현 대신 "조건들이 화합해서 이루어진 것은 겉보기에는 생겨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생겨난 게 아니다, 라는 표현이 훨씬 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한문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던 우리의 옛 식자층들은 얼마전까지 환자들 앞에서 수수께끼 같은 라틴어나 영어 학명들을 줄줄 늘어놓으며 저희끼리만 의사소통하던 의사들, 혹은 일반신도들은 전혀 모르는 라틴어 성서를 갖고서 설교하던 서양 중세의 사제들을 떠올려준다. 지들끼리만 해먹기 쉬운 구조였다는 뜻이다. 

인연법의 핵심은, "세상 모든 사물은 인연화합의 소산이다, 그런데 연생은 무생이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한 물건도 없다," 다. 세상에 한 물건도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건 무슨 말이냐? 지금 우리 눈 앞에는 이토록 많은 물건들이 존재하는데? 

여기서 한 물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얘기는 이 세상에 고유한 자기 정체성 혹은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모든 사람 각자가 자기 나름으로 지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우리 각자의 이데아의 산물이다. 이렇게 말하면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을 테니 예를 들어보자.

요즘에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집이 대세지만 예전에는 다방이라는 데가 대부분 사람들의 약속장소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다방의 다탁에는 흔히 재털이와 팔각형의 유엔 성냥통이 놓여 있곤 했다. 그런데 약속한 애인이 빨리 오지 않으면 심심한 사람들은 그 성냥통의 성냥으로 이런 저런 모양을 만들면서 시간을 죽이곤 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 성냥개비 세 개로 삼각형 모양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럼 다탁에는 그 전까지 없었던 성냥개비 삼각형이 생겨난 셈이다. 그런데 진짜로 없던 삼각형이 생겨난 것일까? 

다른 예로 예전에 집장사들이 날림으로 집을 지을 때 흔히 쓰던 직육면체의 시멘트 벽돌을 예로 들어보자. 블로크 말고 요즘의 붉은벽돌만한 시멘트 벽돌. 그것의 원료는 다 알다시피 시멘트와 모래와 물이다. 이것들을 우리는 세 가지 조건(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멘트와 모래와 물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서 시멘트 벽돌을 찍어냈다. 그럼 시멘트 벽돌이 생긴 것인가? 

벽돌이라는 이름과 적당한 쓰임새를 지닌 잿빛 직육면체의 고체가 생겨난 건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벽돌이라고 할만한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실체라는 게 정말로 생겨난 것일까? 열배 정도의 배율을 지닌 초등학생용 학용품 같은 현미경으로 그 벽돌을 들여다보면 그건 그저 시멘트와 모래의 성긴 결합물일 뿐 그 틈 사이 어디에도 벽돌이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분쇄기로 부숴버리고 나면 거기서도 벽돌이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찾아낼 수 없다. 

우리가 등산할 때 잘 갖고 다니는 큼직한 붉은색 면 손수건을 또 다른 예로 들어보자. 그 면 손수건은 많은 씨줄들과 날줄들을 교직시켜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 면손수건은 얼핏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그저 씨줄들과 날줄들이라는 조건들이 화합해서 이루어진 것일 뿐 손수건이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증거로 그 손수건들의 씨줄들과 날줄들을 다 풀어내버리면 거기에는 수북한 실더미들만 남을 뿐 손수건이라는 실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씨줄들과 날줄들을 이루는 면사는 실재하는 것일까? 당연히 그것들의 원료는 목화고, 목화 역시 이산화탄소와 물과 각종 미네럴과 햇빛이라는 조건들이 화합해서(탄소동화작용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지 애초부터 목화라고 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서민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아파트라는 이름과 그 쓰임새와 가치의 효용성만 있을 뿐 아파트라는 고유한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파트라는 것은 사실 콘크리트와 철근과 유리와 알미늄과 온갖 실내 내장재와 약간의 수분을 포함한 온갖 복잡한 조건들의 화합체에 불과하다. 아파트를 해체시키고 나면 거기에 아파트라는 실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다. 우리의 몸도 결국은 온갖 원소들의 결합체에 지나지 않으며 철수나 영희라는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연들의 화합체는 생겨나도 생겨난 게 아니며, 인연들의 화합체는 무생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이 세상 모든 사물은 불생불멸이라는 말도 나온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물건도 나지 않으며, 나지 않았으니 자연히 멸할 일도 없다는 말이다. 어떤 것도 불어나지 않고 줄어들지 않는다(부증불감)는 말도 마찬가지 얘기다. 우리가 죽어도 죽은 게 아니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실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최근 거대한 쓰나미가 일본 해안도시들을 덮친 후 폐허가 된 그 도시들의 실상을 보면 연기법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온갖 형태의 정겹고 아름다운 집들과 그들이 늘 닦고 쓰다듬던 가재도구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대체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에는 어떤 실체들이 존재했고 그 후로는 어떤 실체들이 사라졌을까? 그저 갖가지 조건들의 갖가지 화합체들이 쓰나미의 충격으로 산산조각 났을 뿐 존재의 어떤 알맹이들도 사라진 일이 없지 않은가. 

어떤 물건도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게 진실이라면 이 우주에 실재하는 것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다 공(空)이란 말인가?  붓다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고 했다. 이 세상은 텅 비었으면서 동시에 충만하다고. 색(물질)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라고 하는 반야심경의 한 귀절도 바로 이런 실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실재하는 것은 오직 그것(It)뿐이다. 코카콜라 사가 <오직 그것뿐>이라는 카피를 써먹었을 때 그 회사는 붓다의 가르침 중의 하나를 표절해먹은 것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참다운 실재요, 참다운 나다. 나는 그토록 위대한 존재다. 누구누구의 아버지, 누구누구의 딸, 어느 회사의 과장, 어떤 대학교 출신이라는 온갖 이름들로 규정되는 너절너절한 나는 실재하는 내가 아니라 나의 관념으로 만들어진 페르소나에 불과하다. 참된 나는 그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고 물리적인 온 우주를 뛰어넘는 모든 존재요, 궁극적인 실재다. 너와 나도 그저 개념상으로 존재하는 것일뿐 사실 우리는, 아니 온 우주는 하나다.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라는 말도 궁색한 표현이 될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영성, 불성, 신성, 성품, 본성, 참나(진아), 마음 등으로 표현하곤 하는 유일한 실재는 사실 어떤 언어로도 형용하기 힘들다. 언어는 늘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본질적인 한계를 지닌 것이어서 "도무지 표현할 말이 읎네(불립문자)"다. 영어로 그 유일한 실재를 표기할 때 흔히 It, Reality라는 말을 쓰곤 하지만 그 대문자 표기법은 은연중에 그들(서양인들)이 God 같은 용어를 쓸 때 꼭 g를 대문자로 표기하는 가치론적 습성을 환기시켜준다. 그들이 신을 뜻하는 용어들을 표기할 때는 늘 대문자를 쓰곤 하는데, 그것은 유일신 숭배를 기저로 하고 있는 그들의 기독교 전통의 소산이다. 이렇게 대문자를 써버릇하면 무의식중에 유일한 실재를 신성시하려는 경향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그것뿐이라면 대문자를 쓸 이유가 없다. 대문자는 소문자가 상징하는 또다른 가설적 존재들을 바탕으로 해서 성립한 이원론적 사고의 표현에 불과하니까. 

이렇게 한 물건도 없으니 비를 맞아도 비 맞을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여성의 아버지는 불교수행자였는데 그 여성이 어렸을 때 비가 오기에 헐레벌떡 집안으로 뛰어들어와 "아이, 비를 다 맞았네", 했더니 그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비를 맞아도 비 맞은 사람이 없다,"고 했단다. 당연히 그 딸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훗날에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심심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존재의 실상을 암암리에 알려주고자 하는 뜻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한 물건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딸자식이 죽은 이의 집에 가서 비탄에 빠진 그 어머니를 위로해준답시고 "연생은 무생이야, 죽은 딸이 없어" 했다가는 뺨 맞기 십상이다. 세상에는 가끔 이렇게 웃지 못할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기도 한다. 머리로만 진리를 알뿐 그것이 온몸으로 체화되지 않아 지혜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이들이 범하는 오류다.

예전에 내가 스승으로 모시던 이는 그래서 가끔 우리에게 "돈을 돈 이상으로도 보지 말고 돈 이하로도 보지 말도록 하라"고 했다. 돈은 쓰임새가 많은 것인데 모든 게 다 비었다고 해서 돈을 무시했다간 쪽박차기 십상이다. 인연법의 핵심을 모르고 사물에 집착하는 것도 딱한 일이지만 인연법에 사로잡혀 인연법 근본주의자처럼 모든 걸 싸그리 무시하는 것도 병폐다. 인연을 함부로 무시하려 들었다간 인연의 응보를 받을 수밖에 없다.  

붓다가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연법의 요체를 가르치려 한 것은 우리의 모든 고통이 바로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로 알고 집착하기 때문에 나온다는 것을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흔히 나로 표현되는 에고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아파트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돈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고통 자체가 실재하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가 노상 거기에 집착해서 사는 모양이 꼭 꿈 속에서 울고 웃고 하는 것이나 같아서 딱한 마음에 일러주려 했을 것이다.

붓다의 인연법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상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것과 같은 자명한 사실. <명석하고 판명한> 과학적 원리보다도 더 자명한 진실이다. 이런 자명한 진실은 믿으려고 애쓸 이유가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 통찰하면 그만이다. 

이런 인연법의 핵심을 머리로 이해하는 데는 머리 좋은 이라면 삼십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창자로까지 체득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수 있다. 그런걸 체득할 때 우리의 온몸은 환희로 젖는다. 어떤 이는 차를 몰고 운전하다 말고 갑자기 그것이 체득되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한다. 그런 건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프로세스다. 

나 역시 중간쯤은 가는 머리를 가졌음에도 인연법의 요체를 체득하는 데 꼬박 삼년이 걸렸다. 어느 날 문득, 아, 정말 그렇네, 했을 때의 기쁨은 참 컸다. 그렇게 단순한 사실을 깨닫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참 묘하기도 하지.    


사진출처:http://rover.tistory.com/tag/%EC%9E%84%ED%98%84%EC%A0%95




일호 11-03-26 16:39
 
무주공산님은 삼년밖에 안 걸리셨군요. ^^
알고보면 '자기'라고 하는 게 사실은 참 별게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별게 아닌데요. 길가에 풀 한포기나 돌멩이 하나처럼 말이지요.
자기가 별게 아닌걸 알게 되면 싸우지 않게 됩니다. (제 경우는 좀 덜 싸우게 되더군요)
싸우지 않게 되면........^^
혁명은 비로소 완성이 된다, 이렇게 봅니다.
무주공산 11-03-26 17:59
 
일호님/ 인연법을 체득했다 해도 갈 길은 멀지요. 근본성품을 밝혀야 할테니까요. 하나의 과정이죠.^^
콜필드 11-03-27 10:28
 
...이해갈듯...;;안갈듯...;;
거위중현 13-05-11 18:27
 
2년전에 무주공산님의 글을 읽고, 그 후로 많은 앞선 선인들의 말이나 글등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 자꾸 스스로를 되새기고 실천하며, 2년만에 겨우 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제 막 깨기 시작한 후라 가야할 길도 멀었고, 앞으로도 부단히 닦아나가야 할 길이지만요^^~
덕분에 요즈음은 매일같은 행복 속에 감동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 계기를 마련해 준 무주공산님께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 이렇게 답글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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