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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가르침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조회 1,156  |  추천 13  |  비추천 0  |  점수 70  |  2011-03-25 04:40
글쓴이 :   무주공산

혁명의 길
The way of Buddha 1


우리는 흔히 붓다나 그의 가르침을 교리나 신앙의 대상 같은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한국에서 십년간 참선수행을 한 바 있는 스티븐 배철러(한국식 법명은 법천)라는 이는 <신앙없는 불교>라는 책에서 이런 개념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붓다의 가르침은 그저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자신의 타고난 참다운 본성에 따라서 살라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 원래 불교 집안에서는 믿음이 아니라 앎을 강조한다. 머리를 통한 앎이 아니라 직관적, 혹은 즉각적 통찰에 가까운 앎을. 예컨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른다는 실상은 그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알면 될 일이지 이것을 굳이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자명한 진실에 신앙이라는 더 묵직하고 경직된 용어까지 동원해야 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믿기 힘든 사회일수록 믿음을 더 강조하고 사기꾼들일수록 유난히 더 믿음을 강조하는 법이다. 

내가 중학생 때 잠시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골수 기독교 집안 출신인 내 친구는 내게 "불교는 믿음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종교가 아니라 학문이나 철학" 이라고 단언했다. 그 친구는 아마 자기 부모나 주변의 어른들에게서 그 말을 주워들었겠지만 나로서는 그 말이 좀 기독교 편향적인 비논리적인 얘기라 여겨져서 뭐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침묵하고 말았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불교는 믿음을 중시하지 않는다" 는 대목만은 맞다고 생각한다. 참다운 불교도들은 대체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목불이나 금불의 형태를 지닌 붓다를 숭배나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그의 가르침의 핵심을 알려고 하지 않고 그저 금과옥조로 생각해서 떠받드는 것은 붓다를 욕보이는 짓이라 여긴다. 

실제로 중국의 어떤 조사는 <길에서 붓다를 만나면 붓다를 죽여라>라고 일갈했고, 또 추운 날에 어떤 절에서 하룻밤을 묵던 객승은 밤에 춥다고 해서 절의 주지가 애지중지 모시는 목불을 태워버렸다. 그 조사와 객승의 말이나 처사는 대단히 무도해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그런 말과 행위를 통해서 큰 법문을 한 것이다. 붓다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것을 이르는 상징적인 용어일 뿐 나무나 금으로 만든 형상 같은 것이 아니라고.  아니, 온 세상이 오직 그것뿐이다. 코카콜라만 <오직 그것뿐>은 아니다. 그것의 이름을 우리는 불성이라고도, Reality라고도 이른다.  

신약성서를 보면 예수가 도처에서 믿음을 강조한 대목들이 보인다. 나는 예수가 내 친구 말마따나 자기의 가르침을 종교로 만들고 싶어서, 자기 말을 신앙의 대상이나 믿음의 대상으로 여겨줬으면 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요즘에는 예수가 인도에서 수행을 했다는 얘기가 정설처럼 통용되고 있는데 그가 어디서 공부했던 간에 아무튼 그의 가르침은 유대 땅에서는 참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다 알다시피 유대땅은 과거 상업이 번성했던 페니키아 지역이고 현세적인 그리스 로마 문화가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사정이 그러니 참다운 자각을 통해 자신과 세상의 실상을 바로 보게 가르치고 싶은 예수로서는 참으로 난감했을 것이다. 패러다임이 달라도 너무 다르니 어떻게 그의 말이 씨가 먹히겠는가.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가난하고 무지한 이들이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배계층 사람들은 유대교 율법과 교리에만 사로잡혀 있으니 예수의 가르침 같은 것은 애초부터 들으려고도 하지 않아서 결국은 그 사회에서 천대받던 어부와 목수, 창녀, 세리 같은 이들만 그를 따른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이들조차도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에만 사로잡혀 있었을 테니 예수로서는 당장은 이해가 잘 안 가겠지만 그저 내 말을 믿어달라고 당부할 도리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가 믿음을 강조했을 뿐 사실은 그 역시도 참다운 자각을 통한 앎을 중시한 현자였을 것이라 여긴다. 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것이야말로 그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여긴다. 양의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참다운 자각을 이룬 이들은 하나같이 존재의 실상, 삶의 실상을 알게 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런 면에서 나는 불교에서 얘기하는 업karma의 개념이나 육도 윤회 같은 것들도 그저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 정도로 여기고 만다. 업이나 윤회 개념들은 사실 붓다 이전에 이미 인도의 베다 문화전통 속에 깊이 뿌리내린 이데올로기고 기득권층 중심의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이데올로기다. 내가 현세에서 어렵게 사는 것은 전생에서 제대로 살지 못한 응보이니 이번 생에서 내가 고생을 해도 잘 참고 견뎌야 내생에 좀더 나은 처지로 태어난다고 하는 이데올로기는 반란이나 폭동,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근절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내가 알기로 붓다는 이런 이데올로기들을 강조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뒤집어엎으려 했으면 했지. 그런 의미에서 붓다는 본인 당대의 의미심장한 혁명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대의 굳은 교리와 신조들을 뒤집어 엎으려 했던 혁명가. 

붓다가 가르친 내용의 핵심을 한두마디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팔만이나 되는 경전들을 어떻게 한두 마디로 요약하랴. 하지만 굳이 무리하게라도 이야기하자면, 문득 정신을 차리고 지금 이 순간 네게 주어진 삶의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마음껏 향유하라다. 이때 정신을 차린다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다 타고나는 근본성품을 자각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흔히 <자각>을 영어에서는 awakening으로 옮기곤 한다.  

일상현실에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받아온 온갖 방식으로 사물을, 사건을,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고 이해한다. 우리의 이러한 해석과 이해와 앎의 방식은 주로 머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이름과 환상과 개념을 통해서 삶의 온갖 실상을 파악한다. 우리가 <황금>이라고 말할 때 황금이라는 그 이름 속에는 이미 우리 인간들이 몇 천년간 부여해온 가치개념이 켜켜이 배어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황금을 볼 때 우리는 황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이미 자기가 알고 있는대로 볼 뿐이다. 

우리는 흔히 황금이나 다이아몬드는 대단히 귀하고 가치 있다고 여기지만 아침에 햇살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는 이슬방울은 하찮게 여긴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 선입견 없이 바라볼 때 사실은 이슬방울이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우리가 제 정신을 차리지 않을 때 사실 우리는 눈에 짙은 선글라스를 낀 채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흡사하다. 그 선글라스 역할을 하는 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온갖 이데올로기, 편견, 개념, 관점, 잠재의식이나 무의식 같은 것들이다. 우리 대다수는 사실 그런 것들의 노예다. 우리는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대의 온갖 가치관이나 심미안을 다 벗어던져버리고 사물들을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다르게, 아주 새롭게 보는 예술가들이야말로 밝게 열린 눈으로 존재의 실상을 바라볼 줄 아는 수행자들과 가장 비슷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테니스장 위에서 물고기가 유유히 유영하는 그림을 그린 마그리트는 물고기는 물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믿는 보통 사람들의 철벽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한 셈이다. 인생은 환영이고 그림은 더더욱 환영인데 그림에서조차도 상식적인 현실감각을 내세워서 뭘 어쩌자는 얘기인가.     

붓다를 비롯한 온갖 선각자들은 우리에게 그런 이데올로기나 기존개념들에서 해방되어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바로 보라고 가르친다. 그렇게만 볼 수 있다면 불성이니 신성이니 해서 어떤 절대자 비슷한 존재들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우리 내면에서는 우주 전체와 동렬인 지혜의 빛이 늘 환하게 빛나고 있으니 그저 그것이 원래의 빛을 회복하게 하기만 하라고, 그리고 그 빛을 통해 삶의 실상, 존재의 실상을 환히 비춰보면서 삶의 온갖 오밀조밀한 환상적 면모들을 생생하게 즐기면서 살라고.
 
붓다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흔히 사성제, 12연기, 8정도 등을 들 수 있는데 나는 이 중에서 12연기, 줄여서 <연기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인연법>이라고도 하는 이 연기법은 존재의 실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가르침이며, 머리로는 쉽게 알 수 있으면서도 본인이 실제로 선글래스를 벗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것처럼 연기법의 실상을 온몸으로 체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불교 집안에서 하도 깨달음을 신주단지처럼 떠받들어 모시고 현생에서는 가망없으니 내생에서 기약한다는 둥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거 무지하게 어려운 건가부다, 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런 식으로 회자되는 깨달음이라는 말 자체가 이데올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자각의 빛은 이미 모든 사람들에게 다 내재해 있으니 그저 선글래스를 벗고 바로 보면 될 일이다. 그래서 틱낫한은 "한 순간 정신을 차리면 부처요, 한 순간 정신을 잃으면 범부," 라 했다. 

깨달음은 인간이 부단히 갈고닦아 이루어내는 빛나는 성취물 같은 것이, 애초에 없었던 것이 어떤 임계점을 돌파해나가면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없었던 것이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안개나 구름 같은 것에 가려진 것이 뒤늦게 나타날 뿐이다. 깨달음이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생겨났다는 얘기는 원숭이도 천년 동안 정성스럽게 심신을 갈고 닦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얘기와도 같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신화지 사실이 아니다. 그저 제정신을 차리면 자각상태에 든 것이고, 각종 이데올로기나 잡다한 개념들에 휘둘려서 보면 헛것을 보는 것일 뿐이다. 




coyote 11-03-25 15:39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보다 근원적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군요
하얀연인들 11-03-25 15:45
 
잘 읽었습니다
일호 11-03-25 15:48
 
도가도는 비가도, 명가명은 비상명이라는 말도 저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합니다.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사실 어찌보면 쉬운 얘기인데, 많은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요.
무주공산 11-03-25 18:26
 
글을 올리고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자기 혁명의 이야기가 어울릴 수 있을지, 싶어서. 그런데도 관리자님이 이 글을 메인에 올려주시고, 코요테님, 하얀연인들님, 일호님께서 덧글을 올려주시니 적지 아니 위안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새삼 실감하는 것은, 글은 쓰는 이가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들의 내면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글을 올릴 때마다 언제나 미지의 세계에 던져지는 것 같은 불안감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불안감에서 끝내 해방되지 못할 겁니다. 그것은 글이 지닌 본질적인 속성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늘 이런 불안감을 기꺼이 싸안고 늘 모험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콜필드 11-03-25 20:43
 
사물을 있는그대로 보는 그 직관을 갖고 살다보면 그게 바로 진리요, 삶이다.
사람이 살면서 계산적으로 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직관 이전이나 이후에 이미 이성은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으니깐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일호 11-03-26 00:09
 
무주공산// 저의 별것 아닌 댓글이 위안이 되셨다니 제가 감사드릴 일입니다. 말씀을 뵈니, 무주공산님의 불안은 염치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불안하신 채로 편안하시리라 믿습니다. 자주 좋을 글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제 능력닿는대로 지원사격하겠습니다. ^^
무주공산 11-03-26 11:38
 
일호님/ 같은 길을 가는 이의 따듯한 호의와 격려에 얼마나 감사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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