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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조회 2,453  |  추천 28  |  비추천 1  |  점수 124  |  2011-02-23 05:08
글쓴이 :   무주공산

내가 아는 이들 중에서 <중질>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를 수행정진하는 사람이 아니라 중질하는 사람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그는 구도자가 아니라 밥 벌이 방편으로 중 노릇을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에는 생사문제를 타파한다는 대단한 목표를 세우고 수행을 좀 한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고 어느덧 수행도 일상화되고 나니 점차 중노릇이 직업 비슷해진 것이다. 

그는 내게 "요즘에는 중도 연예인처럼 개인기가 있어야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점, 사주, 관상 같은 걸 잘 보거나 침뜸을 잘 하거나 심리상담 같은 것을 해주는 식으로. 그런 개인기가 없으면 찾아오는 신도들이 없어 궁기가 든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딱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중도 입이 있으니 먹고 살긴 해야 하고, 먹고 살려니 자연 남의 시주에 의지할 수밖에 없고, 남의 시주를 받으려면 저도 뭔가 팔아먹을 게 있어야 하겠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간 한심해뵈지 않는다. 그의 삶의 양태가 건강해뵈지 않아서다. 남들이 저자 바닥에서 피땀 흘리며 번 돈을 공짜로 먹으려 드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그게 어찌 건강하다고 할 수 있으랴. 과거 중국의 백장선사는 죽을 때까지 치열하게 수행하는 삶을 살면서도 매일 밭에 나가 일했다. 제자들이 말리는데도 굳이 그렇게 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질타했다. 백장의 그런 결기어린 질타야야말로 오늘을 사는 눈 푸른 젊은 납자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경종의 말이 아닐 수 없다.  

어디 일부 중들만 그렇겠는가. 개신교 쪽으로 가면 아예 이건 시장바닥보다 더 너절하다. 내 어린 시절 교회 친구들 중에서 사춘기 때 탈선하여 공부도 하지 않고 말썽만 무지하게 피우다 뒤늦게 각성한 놈들은 꼭 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벼르곤 했다. 이것들이 무인가 사설학원 비슷한 그런 대학에 들어가려 했던 건 뒤늦게 맹렬한 종교적 열정에 사로잡혀서가 아니라 남들 공부할 때 온갖 망나니 짓을 해댄 바람에 공부할 때를 놓친 뒤 저 같은 처지에 <사>자 붙은 사람이 되어 신분상승을 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목사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기사 그런 꼴통들이 뒤늦게 무슨 재주로 변호사, 의사, 판검사가 될 수 있겠는가. 

전통과 역사가 있는 한국신학대학을 비롯한 몇몇 신학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신학대학 출신자들의 상당수는 이런 어중이떠중이들의 범주에 속한다. 이것들 역시 참된 종교인이 아니라 그저 목사나 전도사를 그저 자기 같은 못난이가 넥타이 매고 폼잡고 살 수 있는 직업의 하나 정도로 인식하고, 그 짓거리 잘 해서 이 험한 세상에 잘먹고 잘 살려는 인간들에 다름 아니다.

그런 장님들이 목회를 하는 교회에 나가는 장님 신도들 역시 정상인 이들보다는 비정상인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과거 수유리에 살 때 가끔 새벽에 산에 올라가다 보면 미명의 어둠 속에서 이상한 방언을 미친듯이 외쳐대는 이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내가 볼 때는 분명 정신과 치료를 요하는 중증 환자들로 보이지만 그들은 장님 목회자들의 인도를 받는 장님 양 중의 하나여서인지 새벽녘의 적요를 맛보려고 찾아온 이들은 늑대의 하울링 비슷한 그들의 정체불명의 외침을 들어야 했다. 그런 이들은 곧잘 예수의 말을 듣기도 하고 예수를 만나기도 하고 그런다는데 내가 보기에는 하나같이 맛이 간 사람들처럼 보인다.  
 
아마 이 사회가 서구복지사회를 반만큼이라도 흉내를 내려 들었다면 그렇게 맛이 간 이들도 정신과 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위정자들이 세금은 빈틈없이 내되, 본인의 복지는 본인이 알아서 잘 하라고 외쳐온 이 사회에서 그들이 갈 데는 그런 장님 목회자들이 횡설수설하는 교회 같은 데 밖에 더 있겠는가.
 
사실, 과거 이 사회가 민주화 과정을 밟는 과정에서 가톨릭은 적지 않은 기여를 했고, 그 때문에 의식있는 건실한 중산층 신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가톨릭은 적당히 교육받은 중간층 신도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종교처럼 비친다. 일부 사람들이 지적하듯 우리나라에서만은 개신교가 배타적인 원리주의자들이 득실거리는 개구교요 가톨릭이 진정한 프로테스탄트 같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어지럽고 험한 현대사를 살아온 이 땅의 무지한 서민들의 상당수는 개신교 교회를 찾아갔다. 그들은 거기에서 가톨릭처럼 통일적인 이념에 의해 엄격하게 훈련받은 진지한 사제들이 아니라 수많은 무인가 신학대학을 졸업한, 거의 사기꾼에 가까운 목회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런 사기꾼들은 이 타락한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올바른 길을 가라고 권하는 게 아니라 신도들의 세속적 욕망을 더 부추기고 정당화해주는 대가로 소정의 보수를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건 종교가 아니다. 니체는 <선악을 넘어서>에서 religion과 relious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전자는 종교의 참된 목적과 의의를 상실했고 후자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진리 추구에 가깝다고 했다. 그런 사기꾼들은 설교할 때의 말투도 왜 그리 이상하던지. 사기성이 짙은 목회자들일수록 그 말투가 그냥 대화투가 아니라 무슨 노래가락을 닮아 있다. 예전에 재미없는 과목인 국어 강의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서한샘의 강의 같은 이상한 가락이 실린 말투.

그런 말투는 사실 신도들 졸지 말라고 어투에 변화를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氣적인 세례이기도 하다. 일반인들로서는 잘 포착하기 어렵겠지만 사실은 그게 일종의 사스러운 기운으로 신도들을 장악하기 위한 의식적, 무의식적 수작일 가능성이 많다. 그런 설교를 한참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사기꾼이 발산하는 기운의 장의 포로가 된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의 말만 떨어지면 아멘, 할렐루야, 믿솸다, 라는 말로 화답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그런 사기꾼들은 신도들이 성서에 깃든 참된 뜻에 따라서 살게 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저의 뜻에, 신도들의 뜻에, 성서 내용을 갖다 맞춘다. 사실 성서에 밝은 이들은 구약은 창세기를 제외하고는 종교와는 거의 무관한 내용으로 본다. 요한 계시록을 제외한 신약만 참다운 의미에서의 성서로 보고. 그런 사기꾼들이 기업가들처럼 세속에서의 성공 이데올로기를 설파할 때 그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내용은 구약에서 무수히 찾아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아마 극단적으로까지 나갈 때는 성서에서 사람을 죽여야 할 이유를 천 가지 이상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런 목회자들은 신도들을 참된 진리를 향해 끌어올리려들지 않고 원래도 냄새나는 것들이 신도들을 따라 아예 똥통 속으로 기어 들어가 함께 멱을 감는다.
 
나는 가끔 우리나라의 상당수 개신교 교회야말로 현대 쓰레기 자본주의의 총아인 다단계 기업들과 아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요즘 <네트>라는 약칭을 쓰는 다단계 회사 판매원들 중에는 어딘가 붕 떠있고 눈도 벌겋게 충혈된 게 아주 비정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돈독이 올라서 좀 <환장>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들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병자들이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돈과는 거리가 꽤 멀 것으로 보이는 상당수 개신교 교회들이 전형적인 다단계 회사들을 닮은 작태를 보인다. 다단계 하는 사람들처럼 미친듯이 전도를 해서 교세 확장을 꾀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그런 느낌이 든다. 천민자본주의는 천민 교회를 낳는 것인지.

버스나 전철에서 신들린 것같은 정신병자들이 일반인들을 꼭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취급을 하면서 하루 빨리 예수믿고 천당가라, 한시라도 빨리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라고 외쳐대는 작태, 모처럼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 누가 초인종을 눌러서 귀찮은 마음을 무릅쓰고 나가보면 주보나 팸플릿 같은 걸 한사코 건네주며 교회 나오시라 예수믿고 구원받으시라고 문짝을 붙잡고 늘어지는 아줌마들의 작태, 한낮에 아줌마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줄 알았는데 이 세상에 없는 괴이한 방언을 다같이 합창하는 작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북치고 장구치면서 신들린 것처럼 춤추고 발광하는 작태, 어느 산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기도원에 모여 세상을 등지고 살면서 그 안에서 온갖 해괴한 일들을 벌이는 작태  등을 모르는 이들은 아마 북한에서 내려온 이들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무지하고 가련한 이런 이들이야말로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험한 세상의 간악함과 살벌함에 몰려 결국 교회라는 작은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안정과 위안을 얻은 전형적인 서민들이 아닐까 한다. 그들이 가난과 질병과 주위의 멸시와  차별과 편견과 저임금과 온갖 유무형의 폭력 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다 지칠 때 찾아갈 만한 데가 달리 어디 있겠는가? 어디에서 비슷한 이들과 뒤섞여 위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이들 가운데는 정신병이 심해져서 무리를 이루어 범법행위에 가까운 짓들을 함부로 자행하기도 한다. 툭하면 단군상을 우상이라 하여 목을 따려들질 않나,  유서깊은 절들에 불을 지르려 들질 않나, 절에 들어가 땅밟기를 하려들질 않나, 서울시와 대구시를 비롯해서 온 대한민국을 통채로 서양마귀에게 봉헌하려 들질 않나. . . 본래 예수가 그렇게 편협한 분이 아니었는데 하나같이 편협하고 속에서 증오만 들끓는 것들이 예수를 함부로 팔아서 지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든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나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오늘날 상당수 개신교 교회들은 하나같이 문이 오일육 광장만큼이나 넓어서 그 안으로 장차 멸망할 운명에 처한 온갖 쓰레기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며 드나든다.  저 여의도에도 건물이 무지하게 크고 문도 되게 큰 교회가 있잖은가. 예수는 그런 문이나 길이야말로 멸망으로 이끄는 문과 길이라 했구만 웬 교회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신도들의 돈을 갈취해서 바알의 신전처럼 거대한 탑들을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나.  

내가 예수가 설파한 그 말뜻을 몰라서 이렇게 물리적이고 단편적인 해석을 가하는 건 아니다. 예수는 수많은 어중이떠중이들에 뒤섞여 휩쓸려 다니면서 타락한 세상적 가치관들만 쫒지 말고 외롭고 힘들더라도 내면의 참다운 영성의 숨결에 따라 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한데  요즘의 상당수 싸구려 예수쟁이들은 예수의 말을 도통 듣지 않고 제 에너지 속의 탁한 기운이 시키는대로 미친듯이 휘젓고 다니면서 <불신지옥, 예수천당> 같은 해괴한 구호를 외치고 다닌다. 예수가 아직도 살아서 그 꼴들을 봤더라면 예루살렘 성전의 장사꾼들에게 그랬듯이 채찍으로 사정없이 후려갈기고 장사도구들을 때려부쉈거나 모조리 명예훼손죄로 법원에 고소했을 것이다.
 
신약의 점쟁이 책(데이비드 호킨스라는 미국의 뛰어난 선지식은 요한 계시록은 미아리 점쟁이 책만도 못한 것이라고 질타해마지 않았다)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내용처럼 말세가 가까울수록 정신나간 이들의 무도한 짓도 도를 더해간다는데, 요즘 일부 개신교도들이 이 사회를 모조리 장악하기라도 한 것처럼 광분하는 것을 보면 말세가 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포커스 11-02-23 13:26
 
성도들이 분별력 없이 유린 당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사람들을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세력과 소수 이익집단이 있다는 것은 더 문제입니다. 성도들이 깨어서 이것을 분별하는 눈이 열려 교회에서도 아닌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믿음의 대상이 아니고 목사라도 권위와 돈과 아부가 계속된 곳에서는 소금의 맛을 잃기 쉽습니다. 성도들이 깨어야 합니다.!!
경복궁의아침 11-02-23 22:23
 
교회를 그렇게 만든건 성도의 책임이 반이고 목사의 책임이 반입니다. 돈에 눈먼 성도들과 돈에 눈먼 목사가 만나서 짝짝꿍하는 거지요. 구약 성경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요즘처럼 돈에 눈멀고 사치하면서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았지만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꼬락서니를 보시고 "나는 그런 가증스러운 짓을 용납못한다. 너희들 똑바로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망한다. 부자들먼저 죽이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바벨론에 처참하게 망했습니다. 먹을게 없어 굶다가 자식까지 잡아먹었습니다.
이 시대도 똑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똑바로 살지 않으면 여기서 돈을 더 섬기면 기독교는 이땅에서 철저히 무너질 것입니다.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교회들을 어떻게 심판하실지 궁금합니다. 유다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장로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요?
무주공산 11-02-25 12:50
 
2월 25일자 시사저널에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와 인터뷰한 내용이 실려 있네요. "한국 교회,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 라는 제목으로 나온 글은 기독교 자체 내에서의 뼈저린 자기비판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철저한 자기비판과 성찰이 존재하지 않을 때 종교권력은 한없이 부패해 세속권력의 부패상을 능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손봉호 교수의 한기총 비판도 상당히 예리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개신교의 자정능력에도 일말의 기대를 갖게 됩니다.
조삼모사 11-02-2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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