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사이트맵

대문칼럼 토론 인물 담론 생활 포토 지역교류 사회은행 추천링크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AUTO

 


4,652

156

719

3,678

28



  격암
슬픈한국
 



  이쁜돌의 농촌이야기
플라이의 텃밭이야기
 



  해인의 생존인문학  



  무주공산의 정론직필  



  쭈구리의 결혼일기
fishmool의 기업일기
사랑이의 여행일기
촌아이의 어촌이야기
 



  박정희,그때 그 시절  



  그림자 경제학
한국을 생각한다
 



  Bookcafe  



  현장 스케치  




비우기와 채우기
조회 2,779  |  추천 7  |  비추천 0  |  점수 30  |  2011-08-24 09:47
글쓴이 :   해인

비우기와 채우기: 
My Name is Memory 읽고



서점에서 우연히 읽게 문장을 보고 책을 샀다. 로맨스 소설이라고 포장 되어 있어서, 그런 식으로 읽으면 영락없는 남녀 사랑 이야기다. 천년의 기억, 기다림, 그리고 사랑.  표지 다음의 추천의 말들도 온통 천녀유혼 식의 판타지 소설의 아름다움에 빠질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예상대로 책은 판타지 사랑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페이지 페이지 마다 숨겨져 있는  존재의 비밀과 영혼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당신 마음 속에 프로이드와 융이 등장할 것이다. 나는 융이 수십 번을 읽고 그렇게 감탄 했다는 티벳, 사자의 서를 올렸는데, 그 순간 책의 작가, Ann Brashares가 아마 철학을 공부 했으리라고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작가 프로필에는 그녀가 철학을 전공 했다고 나왔다. 나는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단번에 책을 읽었고 나름의(추천의 말을 썼던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즐거움을누렸다.  

책의 남자 주인공인 Daniel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I have lived more than a thousand years. I have died countless times. I forget precisely how many times. My memory is an extraordinary thing, but it is not perfect. I am human.”

그는 특이 하게도 전생을 잊지 않고 새로 태어나는데, 몸을 입고 벗으면서 영혼의 진화 과정을 따라간다. 그리고 영혼의 진화는 육신을 매개로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의식이란 몸에 기입된 시간의 흔적이라고 있을 텐데, Daniel은 무의식이라는 오래된 기억을 의식의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축복, 혹은 이어가야만 하는 저주를 받게된다.  (망각의 기쁨이 없는 삶이란? 끊임없이 채우고 붙잡고 있는 삶이란 축복일까 저주일까?)

Daniel의 특이한 기억력으로 인해 그는 천년 이상의 시간을 하나의 가면만을 쓰고 살아가게 되는데, 그 가면은 여인에 대한 죄의식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면이다.  그래서 그는 매번 새로 태어날 때만다 그를 낳아준 부모가 붙여준 이름 대신에 Daniel이라는 이름을 고집한다.  이러한 집착은 영혼의 서사적 일관성이라는 미덕과 동시에 현생에 열려 있는 다양한 삶의 문을 닫아 버리는 역할을 하게된다.

책의 등장 인물 중 Ben이라는 캐릭터는 Daniel의 이러한  집착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Ben도 Daniel과 마찬가지로 천년 이상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만 그는 몸에 기억된 다양한 가면을 현생에 맞게, 자신의 선택을 통해 즐겁게 쓴다. 다시 말해, 그는 김영민 선생이 말씀하시는 ‘자신의 가면을 가르키며 걷는 자’ 이다.  그리고 Ben의 이러한 태도는  다음과 같은 그의 말로 표현된다. “Remembering is not the same as living.” (물론 말은 기억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Daniel이라는 주인공보다 조연인 Ben에게 끌리는데, 왜냐하면 삶이란, 혹은 영혼의 여행이란 끊임없이 채우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비우는 것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집착도 아니고 아예  놓아 버리는 것도 아닌 것, 다시 말해 서사적 일관성과 개방적 우연성 사이에 나를(영혼을) 방목 하는 것, 그 사잇길을 걷게 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 아닐까. 두렵지만 기쁜, 묶였지만 자유로운 이상하고도  경이로운 여행길.  몸에 붙어 살이 되어 버리려는 가면을 거부하고 자신의 가면을 가르키며 걷는 길, 바로 길이 삶(Living) 이 아닐런지.

비우지 않으면(못하면) 채울 없다는 흔한 말이 있지만, 이 말은 모든 것을 비우라는 말도  특정하게 정해진 무엇을(진리를) 채우라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비우기와 채우기 사이에 있는 주체, 그리고 주체의 선택과 결정 속에서 드러나고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삶을 응시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나는 망각과 기억 사이, 비우기와 채우기 사이를 오늘도 흔들리며 걷는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쯤에 이르러 Daniel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천년의 그녀를 앞에두고 같이 죽으면 된다고 생각하다가 한순간 무엇인가를 깨닫는데, 그것은 영원 이라던지 진리 라던지 새로운 몸을 얻어 지속되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순간, 지금 장소, 지금 생에서 만들어가는 주체의 선택과 결정에 관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그녀와 자신의 생명을 구하고자 결심한다. “Thoughts were nothing. Memories were nothing. They were nothing you could touch. They took no time.”

여기서 그가 그녀를 구할 있을지 아니면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같이 가라 않을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지금 생을 비우기 보다 그녀를 잡고 끝까지 팔다리를 놀리며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를 헤엄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프로이드가 말하는 죽음 본능, 그 편안한 안식을 선택하지 않고 몸의 감각을 잃어 버릴 정도의 수영을 계속 한다는 것. 그것도 앞이 보이지도 않는 칠흑같은 바다에서 희망없이.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오늘을 살고자 결심한 그의 주체적 결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말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나쁘다거나 삶을 선택한 것이 일이라는 말이 전혀 아니라는 것.

그렇게 나도, Daniel처럼 혹은 Ben처럼, 비우거나 채우며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하며 나의 가면을 가르키며 걷고자 하는데,   과정 속에서 하염없이 늙어 가면서도  바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내가 비우고 채운 그릇에 가끔은 한번씩 해맑은 달이  뜨기를.

뱀발)
1. 이 책의 주제와 여러모로 관련이 있는 우리나라의 풍습이 있는데, ‘다시래기’라는 진도 지방의 풍습이다. 상가집에서 벌이는 풍악 놀이인데, 줄거리는 아기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즉흥적 상황극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라 한다.  다시래기는 다시 온 아기, 혹은 다시 태어난 아기라는 말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라 하니, 세상의 모든 다시래기들에게 혹은 그 ‘오래된 미래’들에게 인사를! (http://umz.kr/03ORQ )


2. 뭘 버리지 못하는 극단적 사람들 이야기를 ABC에서 봤는데,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아마도 저와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http://abcnews.go.com/Health/surviving-filthy-childhood-daughter-hoarder-clean/story?id=14222198))



3. New York Time지에 실린 선택과 결정에 드는 정신적 비용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  과연, 내가 항상 주장하는 대로 “Too many options are not options. “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에서 주인공이 배에서 내리지 못한 바로 그 이유. 생활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꾸려야 하는 바로 그 이유. (http://www.nytimes.com/2011/08/21/magazine/do-you-suffer-from-decision-fatigue.html?_r=1&scp=1&sq=decision%20fatigue&st=cse)



4. Daniel이라는 이름을 고집한 주인공은 이름이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을 혹은 무의식의 힘을 일깨우는 촉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가령, 살아가면서 타자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수만 번 듣다보면 그 이름이 가진 힘(어휘의 힘)이 무의식에 얹혀있는 세월의 먼지를 쓸어내며 그 힘이 무의식에 쌓여 자신의 운명에 길을 내는 것처럼.  당신 자식들의 이름 짓기에 많은 정성을 들이신 것 보면 우리 조상님들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5.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초기 성장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성인이 된 이 후 자신이 선택하거나 ‘틀’(스승)을 만나 얻게 되는 호는 새로운 변침으로 작용한다. 나는 날 아는 사람들이 나를 해인이라고 불러 주길 바란다.  해인씨 혹은 해인님이 아니라 그냥 해인이라고 불려 주면 좋겠다. 호에 씨나 님을 붙이지 않으니까. 추사 김정희 선생을 보고 추사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 처럼.   그냥 자연스럽게 “해인 생각은 어떠세요?” “해인, 같이 산책하러 가시죠.” 이런식으로 불러 주면 좋겠다.  호칭은 어떤 형식이고 그 형식은(호칭은) 관계의 알짬으로 드러나는 것이니 새로운 관계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씨나 ~님 보다야 낮지 않을까. ~씨 같이 심각하게 오염된 어휘를 버리고 새로운 어휘와 형식을 실험하고 싶은 것. 



6. 어투와 어휘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미국인 선교사인 언더우드라는 분이 1890년도에 편찬한 영한사전에는 그당시 우리 조상님들이 주로 사용한 하오체로 편찬이 되어 있다고 한다. 가령, “Spiritual, to be. 신령하오.” 이런 식이다. 그러고보면 일본식의 ‘다’나 ‘까’로 끝나는 어투는 비교적 최근의 일.  나는 ~소, ~요, ~오 등등 우리 조상님들의 옛스런 어투가 웬지 그립다.



7. Daniel이 말하는 무의식과(몸의 기억과) 의식의(마음의) 쓰임새에 대한 단상.

“These were some of the many skills I had accumulated over my lives. Some skills are in the mind and some are in the muscles, and I have spent lifetimes learning the limitations of the first and the value of the second.” 완전 동감! 몸의 기억을 믿으시라. 수백번 걸었던 전화번호가 갑자기 기억 나지 않을때, 그냥 손가락을 전화번호판에 올리고 손가락이(몸이) 가는데로 눌러보자.  수백 번 반복했던 손동작이 그대를 안내하리라. ㅎㅎ


8. 홍상수가 <북촌방향>이라는 신작을 선 보였나보다. 제법 볼 만한 영화일 것 같다. 예전에 홍상수의 <밤과 낮>이라는 글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홍상수는 밤의(무의식의) 세계에 관심이 많다.  그가 바라보는 무의식의 세계는 언제나 의식의(낮의) 세계와 희극적으로 어긋나는 세계다. 그러나 이제까지 말했던 것 처럼, 무의식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무의식의 또 다른 면을 잘 살피고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9. New York Time지의 기사를 읽다가 Ethics에 대한 기사도 읽데 되었는데, 신학과 윤리학 공부에 자신의 커리어를 모두 바친 Joel Marks라는 철학교수의 깨달음을 적은 글이었다. 그 분의 깨달음을 한 마디로 하면 “Ethics without Morals.”인데, 글을 읽으면서 그분이 김영민 선생을 일찍 좀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그분이 좀더 빨리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아무튼 글의 첫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The day I became an atheist was the day I realized I had been a believer.” (http://opinionator.blogs.nytimes.com/2011/08/21/confessions-of-an-ex-moralist/)



10. 나는 Simon & 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라는 곡이 무의식에 관한 노래라고 본다. 무의식(Darkness, Dream)에 어떤 진실 혹은 미래의(Vision)의 씨앗이 숨어 있고, 그 오래된 미래는 침묵의 소리로 표현되는 세속의 신에게(TV에, Matrix에) 갇혀있다.  Silence는 submission을 의미하는 것.  노래 속 나는 꿈 속에(무의식에) 심어져 있는 진실 혹은 그 오래된 미래의 씨앗을 느끼지만 아직 그 씨앗은 침묵의 소리에 갇혀 깨어나지 못하는데,  어느 날 꿈을 꾸다 어느 한  순간 vision을 보게되고 그를 둘러싼 침묵의 소리를 느끼게 된다. 그러자 그는 침묵의 소리로 Brainwashed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뭘 말하고 있는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떠들고 있으며, 타자를 진정으로 들으려 하지 않고 건성으로 듣고 있음을 그리고 타자들의 목소리를 나누고 공감하는 노래가 아닌 노래만을 부르면서 감히 어느 누구도 그 침묵의 소리에 저항하지 않고 있음을 알게된다.

여기에 노래 속 나는 바보들이라고 화를 내며 침묵은 암처럼 퍼지고 있음을 알리고자 내 말을 듣고 내 팔을 잡아 같이 저항하자고(다르게 살자고) 하지만 그 깊은 침묵의 심연에 헛되이 삼켜져 버린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이 만든 신을(TV를, 돈을, Matrix를) 숭배하고 기도를 올리는데, 이렇게 서서히 파괴되고 있는 인간들에게 오래된 미래는 깊은 경고를 보내며 침묵의 소리 속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진실은, 무의식의 전언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할렘의 지하철벽이나 서민들이 모여사는 아파트 벽에 쓰여있다고.  우리는 같이 저항하며 다른 삶, 그 오래된 미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The Sound Of Silence
( http://www.youtube.com/watch?v=h-S90Uch2as )
                            By Simon & Garfunkel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I've come to talk with you again
Because a vision softly creeping
Left its seeds while I was sleeping
And the vision that was planted in my brain
Still remains
Within the sound of silence

In restless dreams I walked alone

Narrow streets of cobblestone
'Neath the halo of a street lamp
I turned my collar to the cold and damp
When my eyes were stabbed by the flash of a neon light
That split the night
And touched the sound of silence

And in the naked light I saw

Ten thousand people, maybe more
People talking without speaking
People hearing without listening
People writing songs that voices never share
And no one dared
Disturb the sound of silence

"Fools", said I, "You do not know

Silence like a cancer grows
Hear my words that I might teach you
Take my arms that I might reach you"
But my words, like silent raindrops fell
And echoed
In the wells of silence

And the people bowed and prayed

To the neon god they made
And the sign flashed out its warning
In the words that it was forming
And the sign said, "The words of the prophets are written on the subway walls
And tenement halls"
And whispered in the sounds of silence




                                                                                                                          
                                                                                                                              ⓒ해인&사회적네트워크&2011년 8월 24일






무주공산 11-08-25 03:52
 
사이먼 앤 가펑클의 가사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특히 April come she will은 ryme이 너무 뛰어나
아이들에게 영시의 라임을 이해하게 하려 할 때 자주 써먹었죠.

한데 Sound of silence는 몇십년 동안 한번도 분석해보려 하지 않았어요. 덕분에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감사. 미국의 60년대는 역시 매력있는 시대였다는 느낌이 드네요.
해인 11-08-25 07:11
 
요즘 대학교 때 조금 치다 때려친 기타를 다시 잡아 보는데요. Sound of Silence곡을 연습하고 있는 중 이었죠. April come she will을 다음 연습곡으로 정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로빈 11-08-25 20:53
 
사실 몇번을 더 읽어봐야 이해하련만 가을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해인~ 항상 건필하세요.
해인 11-08-26 03:41
 
해인이라 불러 주시니 제가 꽃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꽃> 김춘수
해인 11-08-30 03:24
 
오늘 새벽에 Radio Lab을 듣다가 Memory관련한 내용이 있길래 들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이 많네요. (http://www.radiolab.org/2007/jun/07/)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기억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기억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리적/육체적 차원에서 설명하고 그것의 사후적 효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보여 줍니다. 기억의 재구성과 그 영향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한데요. 놀라운 것은 추억하면 할 수록, 기억을 떠 올리면 떠 올릴수록 진짜 그 당시의 생생한 기억이 사라지고 사후적으로 기억을 떠 올릴 때마다 매번 다시 재구성된다고 하는군요. 출연한 과학자들은 "Memory is creative. It is an active creation. We are re-constructing it."라고 말합니다. 

가령, 첫키스의 추억을 계속 떠올리기 보다 오히려 기억상실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다시 떠 올랐을 때 그 첫키스 경험에 진짜 가까운 기억으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하네요. 진짜 기억을 보존하려면 잊어야 한다라... 아이러니 한데요. 그러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은 진짜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사후적으로 재구성되는 비평과 돌아봄으로 재배치된 기억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이외의 것은 몸에(무의식에) 맡기고 걷는 수 밖에 없을 듯.
생명살리기 12-08-26 21:28
 
해인



공지 이 게시판은 해인님 전용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0 0 19755 01-11
10 비우기와 채우기 (6)
해인
7 30 2780 08-24
9 인문경제학 2부 vs 3부 (10)
해인
9 50 1889 06-03
8 장하준과 조선일보 (5)
해인
16 80 3060 04-26
7 홍상수의 밤과 낮 (1)
해인
3 20 1422 04-18
6 담배, 약속, 냄새, 외부성에 대한 단상 (4)
해인
6 40 2015 04-15
5 인문경제학: 서문 (6)
해인
14 80 2544 04-12
4 주고받기의 빛 (5)
해인
7 30 1746 03-27
3 진보의 미래 (10)
해인
21 50 2165 01-09
2 중도와 지원행방 (11)
해인
25 50 2555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