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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와 지원행방
조회 2,555  |  추천 25  |  비추천 0  |  점수 50  |  2010-12-20 15:41
글쓴이 :   해인

중도와 지원행방

언젠가 이택광님이 모든 것은 넘겨짚기 아니냐고 하면서 인문학에서는 이를 Abstraction(추상화)라고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물리나 전자공학등 과학분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념중 하나가 이 Abstraction입니다.
Abstraction없이 Modeling이 없기 때문인데요. Modeling이란 어떤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가정(assumption)을 하고 그 assumption에 기반해서 실제 복잡한 현상을 추상화하는 작업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델을 통해 우리는 실제 현상을 예측하고 실제현상과 잘 맞아 떨어지는지 검증하죠. 잘 맞아 떨어지면 그 모델을 계속 사용하고 어느 순간 맞지 않으면 새로운 assumption이나 새로운 parameter를 도입해서 modeling을 새로합니다. 예를들면, 고전물리학에서 사용되던 고전역학(뉴턴) 모델들이 원자세계에서 잘 맞지 않으니, 새로운 assumption을 하고 그에 기반한 abstraction을 한 결과가 양자역학의 등장이죠.

여기서 중요한 말이 assumption(가정)을 통해 abstraction(추상화)를 한다는 말인데요.
이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사실 우리 인간은 완벽하게 알지 못하면서(그렇기에 어떤 가정을 해야아죠.)
일단 현실과 현상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적절한 가정을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당 현실과 현상을 추상화시켜 이해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러한 인간의 추상화 능력을 인류진화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로 보는데요. 왜냐하면 추상화를 통해 사고의 효율성과 의사전달/의견교환의 신속함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여기에도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할 어둠들이 있는데요. 추상화란 복잡한 사태의 전부를 통짜로 완벽하게 이해하는 과정이라기 보다 추상화에 필요한 어떤 assumption에 불필요한 정보는 과감하게 생략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이는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인데요. 그래도 이를 항상 유념해야겠죠.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다시말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을 이해한다고 말할때, 이는 그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이 이러저러해서 그럴것이다라는 가정에(넘겨짚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타자가 어떻게 느끼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죠. 단지 '산책'(참여와 개입)을 통해 배우고 소통을 하고자 할 뿐.
가령, 언젠가 CNN에서 본 17살난 자폐아의 경우처럼 말도 못하고 이상한 소리만 내며 손발을 배배 꼬며 걷지도 잘 못하는 소녀가 어느날 우연히 만진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해 아주 아름답고 정확한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던 순간 그녀의 부모는, 그녀의 형제는, 그리고 우리는 깜짝 놀라며 배우는 것이죠.

자, 여기서 질문을 하나하죠. 1 + 1은 항상 2가 맞나요?
혹시 이 영구불변의 진리같은(완벽한) 수식이 사실은 어떤 assumption에 의해 만들어 진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그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추상화한 결과물이 수학이라는 학문은 아닐까요?
예전에 우스개소리로 찰떡 하나에 또 다른 찰떡 하나를 더하면 2가 아니라 1이 된다고 농담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사실 이는 농담이 아니라 놀라운 진실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죠. 이 경우에 1 + 1 = 1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1 + 1 = 2라고 하는 수식의 어떤 assumption이 무너졌기 때문인데요. 어떤 assumption이 무너졌는지 보이십니까? 그것은 바로 더하기 수식에서 단위 개체는 합쳐지지 않는다는 가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갯수라는 단위에서 적용되는 이 가정을 벗어난 경우엔 적용이 되지 않는 수식이라는 것이죠.
물론 무게라는 단위에서는 여전히 1 + 1 = 2 입니다. 찰떡이 붙어서 하나가 되었던 말던 말이죠.
그러나 이 무게라는 단위도 어떤 assumption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는데요, 중요한 것은 이렇게 크리스탈같이 깨끗한 진리처럼 보이는 수학도 사실 알고보면 그렇게 가정하기로한 약속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외부성에 스스로 겸손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 문장이 생뚱맞게 들리는 분은 다음 글을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inmun_economics/13)

아무튼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이나 우리가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고 현실과 현상에 적절히 부합하는 결과가 나오면 그게 무슨 진리인양 떠받드는 경향이 있는데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떤 가정을 통해 추상화를 하고 이론을 만들어 나갈때 진실의 많은 부분이 과감하게 생략된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특히 수량화/정량화/수치화에 능한(사실 능하다기 보다도 수량화등이 가능한) 자연과학은 과학적 객관성을 주장하기 이전에 그 바탕에 있는 assumption을 끊임없이 되돌아 봐야하겠죠.

앞의 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의 불완전함에 유념하면서 (/assumption이 무엇인지 잊지않으면서/text를 둘러싼 context를 잘 돌아보면서/생략되는 정보와 진실의 무게를 느끼며) 외부를 향한 걸어가는 '산책'이 인문학/자연과학/혹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학문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김영민 선생이 말씀하시는 "섬세와 결기"라는 생활양식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섬세하게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쳐다보며 통시적 역사/공시적 상황을 두루 살피펴 응해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죠.  (응한다는 것의 의미는 다음 글 단상8번을 참조하세요. http://blog.daum.net/inmun_economics/9)  그럼 왜 결기냐? 그것은 바로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절대적으로 옳거나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 생략되는 정보와 진실의 무게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걸어가는데에는 체계와의 불화/어긋냄(피동적 어긋남이 아닌 어긋냄)의 의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다시피, 중도란 어떤 중간적 입장을 가르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중도란 두루 살피고 어느 한편을 드는 태도와 입장을 의미하죠. 저는 중도가 김영민 선생이 말씀하시는 지원행방(섬세와 결기)과 같은 말이라 보는데요. 가령, 임지현이 일상의 파시즘을 들먹이며 너도 친일매국수구세력과 별 다를바 없는 똑같은 놈이야라며 반성하라고 조중동에 글을 쓸때, 그는 지원행방을 잊고 있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진짜 바닥까지 파고 들어가면 다 똑같은 놈이죠. 다시말해, 나는 연쇄살인범이기도 하고 테레사수녀이기도 하며, 부처/예수이자 히틀러이기도 하니까 말이죠. 허영과 냉소에 들뜬 임지현도 다 내안에 있는 것이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결정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을 선명히 드러내며(능동적으로 어긋내며) '산책'(참여와 개입) 하고자 하는 결기가 중요한 것이죠. 학문을 하는 학자이니 니편 내편없고 객관적으로 다 욕해주면 되나요? 그건 아니죠. 다시 반복하지만, 객관성이니 진리니 학문적 순수성이니 이런건 없습니다. 임지현의 저런 태도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친일매국수구세력이 이용해 먹기 딱 좋은 태도이고 실제로 임지현을 잘 이용해 먹었습니다. 결국 조중동이 임지현을 통해 대중들에게 주입시키는 프레임은 이런 것이죠. 다 똑같은 놈이다. 별 놈없다. 너도 깨끗한척 하지말고 그냥 이대로!

물론 일상의 파시즘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파시즘을 지적하기 이전에 한국 파시즘의 총본산 조중동에 글을 쓰지 않는 중도적 태도가 먼저죠. 그런데 슬프게도 한국의 먹물들은 옳은 소리를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얼마전 불거진 민노당 이정희 의원에 대한 공격도 같은 차원의 것인데요. 북한 세습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라. 그것도 비판하느냐 아님 동조하느냐라는 식의 무식한 질문을 퍼 부었죠.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것도
하나의 선택과 어려운 결정일 수 있다는 사실은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중도는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나 두루 살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말이죠. 우리가 북한에 대해 뭘 알죠?
우리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친일매국수구세력의 최후의 보루에 막혀 북한이라는 공동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교류/교환/나눔을 계속 해 나갔다면 좀 더 잘 알수 있고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텐데
그것도 친일매국수구세력의 재집권에 길이 막혔죠. 거기다 온갖 악선전/역정보만 가득한 상황에서 우리가 안다고 착각하는
북한이 진짜 북한의 모습인지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북한을 두루 살필 수 없으면서도 세습을 허용하는
북한 공동체를 우리의 잣대로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려운것이죠. 더군다나 삼성의 3대째 세습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 국가와 기업은 다르다구요? 글쎄요. 우리는 지금 삼성이 곧 한국인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나요?

이런 말이 있죠. A hungry man is not a free man. 그런데 이 말은 실제로 굶주리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먹고 사는데 묶여 다른 어떤 생각도 어떤 참여도 거의 불가능하게 되면 그도 사실 not a free man이죠.
그래서 삼성 공화국에 사는 우리도 자유인이라기 보다 자유인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부터 돌아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신에겐 관대하고 타자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13절. "너나 잘해 이 자식아~ ".

물론 북한을 잘 모른다고해서 말도 하지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해야죠. 우리 바로 위에 운명처럼 붙어있는
이웃(타자)이니까요. 다만, 우리가 북한을 이야기할때 조금 더 열린자세로 국제적 정세를 제대로 파악해가며 하자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국제정세는 지구적 판갈이가 격렬하게 그러나 잘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고, 그 판갈이의 중심에 한반도와 중동의 격변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아가고 있는 시점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대비로 60년을 군사력증강에만 매진했고, 지금은 이제 미국과 붙어도 혼자 죽지는 않는다는 자신감(?)으로 외교/군사적 총공세를 퍼붓고 있는 상황이죠.
2012년까지는 통일하겠다는 것인데요. 주한미군철수하고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바꾸자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중국은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미국과의 대격돌을 대비하고자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구요.
중국이 얼마나 다급한지 김정일 아저씨의 동북3성 방문을 묵인하고, 게다가 정상회담을 길림성에 직접 찾아가서 했습니다.
외교적으로 이보다 더한 환대는 없는 것인데요. 동북삼성은 항일유격대의 주요 활동지역이었고 동북삼성 방문은 김일성의 평생 소원 중 하나였는데 중국의 반대때문에 단 한번도 방문하지 못한 지역이죠.

아무튼 각설하고, 이 글의 제목인 중도와 지원행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런 질문을 해보죠.
인간의 욕망중에 가장 강렬한 욕망이 무얼까요? 저는 변신의 욕망이라고 보는데요.
기본적 생존의 욕구가 채워지면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르게 살려는 변신의 욕망이 꿈틀되니까요.
그래서 영화나 소설에서 대부분의 히트작은 반드시 변신을 모티브로 하고 있죠.
변신의 욕망이 신분상승 일수도 있고 글쓰기/그림/음악 아니면 깨우침이나 해탈 혹은 대를 잇는 유전자의 전달 일수도 있겠죠. 그런데 어찌보면 좀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혹은 좀더 나은 나를 꿈꾸며 중도와 지원행방을 하셨던
(좌우 꼴통들에게 온갖 모욕을 다 받아가며) 노무현 대통령이야말로 진정한 변신에 성공한 사람이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고뇌하는 인간에서 성인으로 말이죠. 자살하러가는 길에, 마당에서 본 잡초를 무심히 뽑아 던지며 부엉이 바위로 오르던
그 모습은 분명 성인의 모습이었으니까요.

노무현 대통령께서 그러셨죠.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지 마시라고. 저는 여기에 이런 말을 추가하고 싶네요.
중도와 지원행방으로(정답은/진리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진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assumption을 통한 추상화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변신의 지향점이 비슷한 세력들을 잘 꾸려서 반드시 어긋내야할 대상(ex: 조중동)에 저항하고 연대하자고. 내가 진짜진보니 원조진보니, 혹은 진보고 보수고 다 똑같이 썩은 놈이니 하며, 서로 외면하고 쳐다보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나비로 변신할 수 없다고.





동백 10-12-20 17:09
 
아주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격암 10-12-20 17:42
 
잘읽었습니다. 아주 성실하신 분같습니다.  덕분에 김영민님의 홈페이지 구경을 했습니다.
쉼표 10-12-21 05:18
 
오랜만에 글을 뵙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SteelHeart 10-12-21 06:1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정맹어호 10-12-21 13:36
 
잘 읽고 갑니다..^^*
sungkha 10-12-21 21:00
 
아! 양명은 무엇인가?
해인 10-12-22 03:22
 
급하게 쓰다보니 몇 가지 빠진 것이 있었네요.

1. 김영민 선생의 '지원행방'을 제가 중도로 읽었는데요. 사실 그 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
    그냥 제 그릇만큼만 가져 온 것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2. 마지막 문단에 한 문장을 더 추가하고 싶은데요.
  노무현 노 무현 대통령께서 그러셨죠. 정치가 더럽다고 외면하지 마시라고.
  저는 여기에 이런 말을 추가하고 싶네요. 이게 다 내것임을 잊지 마시고, 중도와 지원행방으로
  변신의 지향점이 비슷한 세력들을 잘 꾸려서 반드시 어긋내야할 대상(ex: 조중동)에 저항하고 연대하자고.
  내가 진짜진보니 원조진보니, 혹은 진보고 보수고 다 똑같이 썩은 놈이니 하며, 서로 외면하고 쳐다보지 않으면 우린 영원히 나비로 변신할 수 없다고.

다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산들바람 10-12-23 10:0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레이블 10-12-25 20:27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바다 11-04-25 10:5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생명살리기 12-08-26 21:23
 
해인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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